뉴욕=조슬기나특파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31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입 절차를 축소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구체적인 시한은 명시하지 않았다. 종전 후 가입 일정 등과 관련해 확답을 원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불확실성은 약점"이라며 "러시아가 계속 침공할 동기가 된다"고 실망감을 토로했다.
나토 31개국은 11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정상회의 첫날 공동성명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공동성명 11항에는 "회원국들이 동의하고 (가입에 필요한) 조건이 충족되면 우크라이나에 가입 초청장을 보낼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경우 향후 가입 신청국이 거쳐야 하는 '회원국 자격 행동 계획'(MAP·Membership Action Plan) 적용이 제외된다. MAP는 나토 가입을 희망하는 국가에 대해 정치, 경제, 군사적 목표치를 제시하고 해당국이 이를 충족했는지를 평가하는 절차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를 위한 강력한 패키지"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지난 4월 나토에 합류한 핀란드 역시 MAP를 면제받아 11개월 만에 가입을 완료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기대했던 실질적인 타임라인은 제시되지 않았다. 종전 후 나토 합류라는 구체적인 일정표 자체가 러시아의 침공을 억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바라본 우크라이나로선 기대에 못 미치는 모호한 결과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시한이 정해지지 않은 것은 전례 없고 터무니없다"고 우려를 쏟아냈다. 그는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초대하거나 동맹국으로 만들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 같다"면서 "러시아에게 이는 계속 침공할 동기가 된다. 불확실성은 약점"이라고 비판했다.
나토 31개국은 이번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두고 상당한 이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미국, 독일 등 주요 국가들은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러시아를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해 구체적인 일정을 정하는 데 반대 의사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의견 차이를 묻어두었다"면서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우크라이나를 실망시켰다"고 전했다.
이는 나토를 주도하는 미국의 의견과 일치한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유럽으로 향하기 전 공개된 인터뷰에서 "전쟁이 한창인 지금 나토 회원국으로 편입할지에 대해 나토 내 의견이 만장일치가 아니다"면서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투표를 요구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밝히기도 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킬 경우 방어조약에 따라 나토가 러시아와 직접적인 전쟁을 벌이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바이든 대통령의 당시 설명이었다. 대신 그는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하는 것과 같은 안보 보장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나토 31개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실질적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우크라이나군 현대화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 등이 논의됐다. 또한 나토와 우크라이나가 동등한 위치의 카운터파트로서 위기 대응을 논의하는 '평의회'도 출범한다. 첫 회의는 12일 열릴 예정이다. 이와 함께 주요7개국(G7)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기적 안보 약속을 담은 공동성명도 발표하기로 했다.
한편 나토 31개국은 이날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도 촉구했다. 나토는 공동성명을 통해 "다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프로그램 강력하게 규탄한다"면서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을 비롯해 모든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미일을 포함한 모든 관계국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우리의 이익과 안보, 가치에 도전하는 야망과 강압적인 정책을 공표했다"고 지적하면서 이에 대응한 동맹국 간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