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진기자
투구게 [이미지출처=픽사베이]
백신 등 의약품 개발에 반드시 쓰이는 투구게 혈액을 대체할 수 있는 시험법이 대한민국 약전에 등재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13일 “동물 복지라는 사회적 가치를 제약·바이오 업계로도 확산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의약계에 따르면, 혈중으로 투여되는 주사제·스텐트 등 형태로 된 신약을 개발할 때는 ‘엔도톡신(혈중에서 강한 발열을 일으키는 독소) 시험법’을 거쳐야 한다. 사람이 엔도톡신에 노출되면 고열, 패열성 쇼크 등 증상이 나타나고 자칫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어서다.
이 시험법의 핵심 물질은 투구게 파란 피 안에 있다. 혈구추출성분으로 만든 라이세이트(LAL·Limulus Amebocytic Lysat)라는 물질이 엔도톡신과 반응하면 응고되면서다. 1973년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LAL 시험법을 승인한 이후 엔도톡신 시험의 표준이 돼왔다.
하지만 투구게의 30%는 채혈 도중 죽고, 나머지는 바다로 돌아가더라도 제대로 산란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는 2016년 투구게를 적색목록 멸종위기종에 등재하기도 했다. 여기에 전례 없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전 세계 제약사들이 백신 개발에 나서면서 45만마리의 투구게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약품 시장이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투구게 개체 수 악화와 동시에 대체 물질의 필요성이 커졌다.
식약처가 투구게 혈액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설한 동물대체 시험법(rFC·recombinant Factor C)은 ‘재조합 C 인자’를 활용한 것이다. 재조합 C 인자는 인공적으로 유전자를 재조합해 만든 시약으로, LAL 시험법을 대체할 수 있다. 류승렬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바이오의약품연구과 과장은 “2021년 연구 사업에서 rFC 시험법을 이용해 엔도톡신 시험을 한 결과 특이성, 직선성, 반복성, 정밀성, 완건성 등 5가지 지표에서 LAL 시험법과 성능이 동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이날 오후 동물대체 엔도톡신 시험법 확산을 위해 제약·바이오 업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한다. 엔도톡신 시험은 실행자의 숙련도가 중요한 만큼 새롭게 등재된 시험법을 알리고 정확한 사용법을 알리기 위한 취지에서다. 제약업계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해외에서는 속속 동물대체 시험법의 표준이 마련되고 있다. 유럽 약전은 2021년 12월 재조합 C 인자 사용을 승인했다. 일본은 2021년 4월, 중국은 2020년 6월 각각 약전에 등재했다. 다만 미국은 지지부진하고 있다. 미국 약전에서는 2020년 재조합 C 인자의 표준을 등재하기 위한 제안이 있었지만 2021년 9월 이를 심사하기 위한 전문가 위원회가 해산되기도 했다. 미국 약전은 올해 전문가 위원회를 새로 꾸리고 동물대체 시험법의 표준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동물대체 시험법이 투구게 피를 이용한 시험법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투구게 숫자가 한정된 만큼 제약사들이 새로운 시험법도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