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온유기자
전세는 영어로도 ‘jeonse’다.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임대차 제도라서다. 목돈이 필요한 집주인과 월세 부담을 원치 않는 세입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며 핵심 주거 형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전세사기·깡통전세·역전세난 이슈가 불거지며 전세폐지론에 불이 붙었다.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마저 최근 "전세제도는 수명을 다했다"라고 말하며 제도 전면 개편을 시사하기도 했다.
전세 폐지를 주장하는 채상욱 커넥티드 그라운드 대표는 "정부가 보증보험까지 하며 전세를 촉진하는 것 때문에 시장이 확대됐고, 전세사기·역전세 피해자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면서 "전세 육성보다는 피해 방지가 중요한 만큼 전세보증보험의 한도를 극단적으로 낮춰 시장에서 자연스레 소멸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한 축이자, 임대차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전세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 사기나 역전세를 근거로, 앞으로 전세는 없어져야 하는 특이한 제도이며 선진국처럼 월세가 일반화돼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전세가 유리한 임차인이 많기 때문에 시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며 "수요가 있는 제도를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시민의 주거부담이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이에 전세 제도 자체는 유지하되,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제도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지난해 전세 보증금 총액이 200조원을 넘어가는데 임대인이 이를 모두 돌려줄 여력이 없다"면서 "무조건 폐지보다 무자본 갭투자, 보증금 미반환으로 고통을 주는 시스템 자체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원 장관도 ‘전세 수명’ 발언이 논란이 되자 전세의 점진적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선순위 보증금, 근저당이나 기존 채무가 있을 경우 보증금을 제한하는 방안 등이 제시된다. 에스크로(결제대금 예치) 도입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에스크로는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제3의 기관(신탁사나 보증기관 등)에 입금하면 이들 기관이 보증금 일부를 예치하고 나머지를 집주인에게 주는 방식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라는 제도가 굳어진 것은 전세 대출과 같은 시장 인센티브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전세사기, 역전세를 방치할 수는 없는 만큼 90~100% 수준인 전세자금 보증 비율을 2008년(약 60%대) 수준으로 내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