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수인턴기자
거지방에는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쉽게 들어갈 수 있다. 카카오톡 검색창에 '거지방'을 검색하면 수백 개가 넘는 채팅방이 나온다.
모든 거지방에서 동일하게 적용되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바로 자신의 소비 내역을 채팅방에 공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7000원의 점심을 사 먹었다면 채팅방에 "점심 7000원"이라고 올리면 된다.
이 외의 규칙은 방마다 자유롭게 정해 운영한다.
필자가 속한 방에서는 ▲닉네임 옆에 누적 금액 기록하기 ▲한 달 동안 양심적으로 자기 분수에 맞게 소비하기 ▲병원비·통신비·교통비·주거비는 누적 금액에서 제외하기 등의 규칙을 세웠다.
해당 금액들을 제외한 것은 생활 속에서 꼭 필요한 요소에는 돈을 아끼지 말자는 취지다.
이 외의 나머지 소비는 모두 빠짐없이 기재해야 한다.
필자는 첫 월급으로 가족들에게 선물을 하느라 큰 비용을 사용했다. '이런 비용은 사치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 싶은 마음으로 "효도 비용도 지출에 포함해야 하냐"라고 물었다.
"당연하다"는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덕분에 필자는 5월의 중순도 되지 않았을 때 '이달의 거지왕'으로 확정됐다.
다른 사람들이 사용한 금액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답글을 남길 수 있다.
한 참여자가 유료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채팅을 보내면서 '과소비'가 적발된 일도 있었다. 다른 참여자는 "이모티콘 구매 유도"라며 경고 1회를 부여했다. 유료 이모티콘 소비 조장을 막기 위해 무료 이모티콘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생일 선물을 샀다는 소비 내역에 "당신 자체가 선물입니다"라고 답한다거나, 필사하려고 책을 샀다는 말에 "도서관에서 빌리는 방법이 있는데"라고 하는 등 따끔하면서도 장난스러운 조언들이 이어졌다.
월말 돈을 가장 많이 지출한 거지왕 1등부터 3등은 자필 사과문을 작성해야 한다. 형식은 자유이지만 지출이 컸던 이유는 반드시 밝혀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거지방이 돈을 절약하는 데 도움이 됐을까. 같은 거지방에 속한 '거지'들에게 물었다.
먼저 거지방에 들어오게 된 이유를 묻자 당연하게도 '돈을 아끼기 위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필자처럼 요즘 유행이라는 소문에 친구에게 초대를 부탁한 이들도 있었다.
거지방이 실제로 돈을 아끼는 데 도움이 되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지출할 때마다 채팅방에 공개해야 하고 닉네임 옆에 누적된 금액을 적다 보니 더는 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 참여자는 "거지방 덕분에 세 번 중 한두 번은 안 사게 된다"며 "정말 도움이 된다"라고 답했다.
거지방 트렌드를 씁쓸하게 보는 시선에 대해 참여자들은 "그렇게 우울하게 생각하진 않아도 된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진지하게 돈을 아끼자는 목적도 있겠지만 익명으로 생활 속 절약팁을 나누고, 약간의 불편을 유머로 승화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거지방에서는 "나도 거기 정보 알려주면 0원으로 해드림", "아무리 그래도 마라탕 먹는데 고기를 안 넣어?…괘씸죄로 3000원 추가!" 등 재치 있는 대화들도 자주 오간다. 누군가에게는 돈과 재미를 모두 잡는 놀이일 수도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