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잘못 눌렀다 수백조 증발…증권시장 '팻 핑거'의 위협

단순 입력 실수로 비롯된 팻 핑거
'알고리즘' 매매로 손실 증폭
美·유럽선 '플래시 크래시' 터져

2013년 수백억원대 손실을 낸 뒤 끝내 파산한 한맥투자증권. 그 원인은 직원 한 명의 단순 입력 실수였다. 사태는 한맥의 파산뿐만 아니라, 파산관재인 예금보험공사(예보)와 한국거래소 사이 9년간의 법정 다툼으로까지 이어졌다.

증권사 직원의 착각, 입력 실수 등으로 인해 잘못된 거래가 체결되는 일을 '팻 핑거(Fat finger)'라고 한다. 팻 핑거 자체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인간 오류' 중 하나일 뿐이지만, 그 파장은 기업을 무너뜨리는가 하면 유가증권시장에서 수백조원을 증발시킨 사례도 있을 만큼 거대하다.

숫자 입력 실수로 수백억 손실…증권사 파산까지

2013년 한맥투자증권 주문 실수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한맥 사건은 2013년 12월12일 벌어졌다. 당시 거래소 개장 이후 한 한맥 직원은 주문 실수로 시장 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에 매물을 팔았다.

선물 시장에서 옵션 가격의 변수인 이자율 계산은 보통 "잔여일/365"로 한다. 하지만 이 직원은 "잔여일/0"을 써넣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로 인해 매수가격 상단과 매도가격 하한이 설정되지 않아 모든 상황에서 이익 실현이 가능하게 됐다.

프로그램은 자동으로 막대한 양의 알고리즘 매매를 체결했다. 직원이 뒤늦게 실수를 알아차리고 컴퓨터 전원 코드를 뽑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분 남짓했다. 하지만 그사이 거래량은 3만7900여건에 이르렀고, 결국 한맥은 수백억원의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한맥은 2015년 2월16일 파산했다.

한맥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국거래소는 2014년 예보를 상대로 한맥이 미납한 결제 대금 411억여원을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예보는 거래소가 파생상품시장 감시 및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며 반소를 냈다.

법정 공방은 무려 9년 가까이 이어졌으나, 14일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히면서 한국거래소의 승소로 돌아갔다. 이에 따라 예보는 파산재단을 통해 거래소에 411억5400여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증시 위협하는 '인간 오류'

한국거래소 전광판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팻핑거는 얼핏 단순한 해프닝처럼 보이지만, 단 수 분 만에 막대한 양의 자금이 오가는 증권 시장에서는 치명적인 실수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인간'이 저지르는 실수라는 점에서 언제 어떻게 터질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위험하다.

또 다른 국내 유명 팻 핑거 사례는 2018년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다. 삼성증권은 이 해 4월 우리사주에 주당 1000원의 현금을 배당하려다가, 실수로 주당 1000주를 입력해 배당하는 사고를 냈다.

당시 사고로 발행된 이른바 '유령 주식'은 삼성증권 발행 한도를 수십배 뛰어넘는 28억1295만주(약 112조원)이었다. 그러나 당시 직원 21명은 이 주식이 오인 입력된 것임을 알면서도 매도 주문했고, 삼성증권 주가가 장중 큰 폭으로 떨어졌다.

결국 이들은 유령 주식을 내다 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해 대법원은 이들에 대해 자본시장법 등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美·유럽 증시선 수백조 증발하는 '플래시 크래시' 터져

모니터 주시하는 뉴욕증권거래소 직원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해외에서도 팻 핑거 사건이 벌어진다. 2010년 5월 미국 한 투자은행 직원이 m(million, 100만) 대신 b(billion, 10억)를 잘못 눌러 대량의 매매 알고리즘이 연쇄 작동해 다우존스 평균주가가 장중 짧은 시간 9.2% 폭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두고 '플래시 크래시'라는 용어가 탄생할 정도였다.

플래시 크래시는 지난해 5월 유럽에서 재현됐다. 영국 투자은행 '시티뱅크'의 한 직원이 숫자를 잘못 입력하면서 매도 알고리즘이 발동해 유럽 증시 전체에서 장중 3000억유로(약 436조원)가 증발한 사건이다.

지금은 팻 핑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안전장치와 구제 제도가 마련된 상태다. 첫 플래시 크래시 사태 이후 미국, 유럽의 증권거래소는 잘못 입력된 거래를 체크하고 차단하는 '킬 스위치(kill switch)' 제도를 확립했다.

국내에선 2016년 킬 스위치와 '대규모 착오매매 구제제도' 등이 도입됐다. 킬 스위치는 착오 주문 등 거래 오류가 발생했을 때 증권사의 신청에 따라 거래를 막고 손실 확산을 방지하는 안전장치다.

이슈2팀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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