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종섭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등 가족과 관련한 각종 기념일이 몰려 있다. 자연은 또 어떤가. 신록은 푸르고 꽃들은 자태를 뽐낸다. 그러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살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마약이 이슈가 되더니 얼마 전에는 10대가 자신의 SNS로 생중계를 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충격적인 일도 있었다.
지난 4일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만나 이런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물었다. 인터뷰는 서울 중구 초동 아시아경제 11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이 교수는 “포털에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분석하며 “온라인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근 서울 노원구에서 아내와 아이를 살해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코로나 격리 기간이 끝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다시 대면사회가 되면 잘 적응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 중에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이 이어지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다만 그것을 예상하고 대응하는 사회가 있는 반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우리 같은 사회가 있다.
비대면 사회 종료와 함께 도래하기 시작한 문제들에 대해 보건복지부에서 뾰족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10~20대는 늘고 60~70대의 자살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결국은 정책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복지부는 그동안 기초생활 수급자 대상을 차상위 계층까지 넓히는 등 연령이 높은 분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집중했다. 반면 10~20대는 어떻게 보면 복지의 대상이 아니었다. 비대면 사회가 끝나면서 10~20대들이 부적응 집단으로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아이를 살해하는 경우가 외국에도 있나?
가족이 다 같이 몰살하는 그런 경우는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가족주의 문화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 중심의 가부장적 권한 문제, 집안에서의 권력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자살에 대한 관점, 예컨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더 이상 자살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라고 했지 않나. 커뮤니티들에서도 ‘자살’ 키워드는 금지 키워드다. 대신 쓰기 시작한 용어가 극단적 선택인데 그래서인지 자살을 선택의 옵션 중에 하나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그러니 경우에 따라서는 자살을 조직을 위한 헌신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선택 중 하나로 가족에 대한 책임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아닌가.
‘극단적 선택’이라는 용어가 문제가 있다고 보나.
‘극단적’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선택’이라는 단어다. 선택은 어떨 때 하는가. 인간이 합리적 의지를 가지고 여러 가지 선택을 해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의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경건한 자기희생처럼 취급하는 분위기가 옛날부터 있었던 것 같다. 명예 자살 같은 이런 느낌으로 다루는 분위기, 일종의 자살 판타지가 있다.
가족과 동반자살을 선택하는 가장들의 경우 아이를 사랑했기 때문에 험한 세상에 혼자 남겨놓고 가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건 사랑도 아니고 그냥 살인에 불과하다. 범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알고는 있지만 사회적으로 이런 생각이 보편화 되지 않았다. 이런 걸 줄이기 위해서는 당신이 아니어도 아이는 사회가 키워준다는 신뢰가 생기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인 아동 육아, 보호 시스템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미국처럼 아동 보호 시스템이 명확히 있고, 부모를 대리할 수 있는 사회적 에이전트가 많으면 아동의 유일한 보호자로서 부모의 책무는 좀 희석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 아동 보호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늘 하루 종일 아동을 위탁할 수 있는 곳과 관련한 정보를 온라인에서 찾아봤는데 찾기 어렵더라. 그러니 다 쉬쉬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식에 대한 책임은 부모가 져야 된다는 전제 자체가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아이를 제3자나 제3기관에 맡기는 것 자체를 굉장히 터부시하는 이런 분위기가 있다. 사회적으로도 그런 걸 전혀 권하지 않는 사회이니 부모도 책임이 있지만 사회적 책임도 있다.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면 어딘가에 위탁은 할 수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극단적 선택’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자살이라는 용어를 수면 위로 떠올려야 된다. 자살은 비겁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살아있으면서 자신의 책임을 다 해야 한다. 경제적인 곤궁함에 빠지면 개인 파산이라도 해가지고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이고, 책임을 바깥에서 질 수 없으면 교도소라도 가야 된다. 살아 있으면서 져야 하는 책임 대신에 ‘숭고한 죽음을 택한다’ 이런 식으로 가치관이 형성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우리나라처럼 자살을 많이 하는 나라가 없다. 사회 문화적으로 자살을 보는 관점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
존속(부모, 조부모 등)살인과 비속(자녀, 손자녀 등)살인의 법적 처벌에 있어서 차이가 있나.
존속살인은 가중처벌을 한다. 존속살인죄라는 죄명도 따로 있다. 비속살인은 죄명이 따로 없고 일반 살인죄를 적용 받는다. 학대가 있을 때에는 학대 살해죄라고 한다. 자녀에 대한 살인에 대해서는 좀 경감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판례상 보더라도 비속 사례는 존속 사례에 비해 형량이 짧다. 이런 부분도 비속살인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 (비속 살해는 일반 살인죄로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이와 달리 존속살해죄는 가중 처벌 대상으로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다.)
우리나라는 아동 인권에 대해 이제 각성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아동학대를 범죄로 여기는 시점부터 각성이 시작된다. ‘아동은 더 이상 부모의 부속물이 될 수 없다, 아이는 소유물이 아니다, 체벌한다는 미명 아래 신체적 학대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이제야 퍼지기 시작했다.
요즘 친족 간 성폭행 사건들이 이슈화 되는 경우도 많다.
과거에는 아마 친족 간 성폭행이 더 많았을 것이다. 가족과 친지들이 수치스러우니까 덮자며 피해자를 대상으로 일종의 명예살인을 했다. 전부 다 네 탓이라면서 피해자를 결국 가족 속에서 쫓아냈다. 이제는 아동 인권 보호라는 가치와 충돌하고 구성원들 중에서도 친족 성폭력 피해자를 대리해서 신고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수면 위로 드러나는 일이 늘었다. 그만큼 이제는 인격체로서 개인의 권리가 증진됐다. 아이들도 학대당하면 신고하고 성폭력 피해자도 부모를 성폭력 가해자로 신고한다. 사회적인 규범이 굉장히 개인 중심으로 변화했다.
얼마 전 10대 여학생이 SNS라이브를 켜놓고 투신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이런 사건이 처음이 아닌 것 같더라. 제보에 따르면 잔혹물 영상을 소비하는 시장이 생겼다. 원래 성착취 영상이 주요 상품이었는데 그걸 단속하기 시작하면서 동물 학대 영상 이런 것들이 한동안 뜨거웠다. 이제 그 끝에 자살 영상 같은 걸 수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다. SNS 상에서 자살을 부추기고 강요하는 일들이 일부 커뮤니티에서 일어나고 있다.
10대 아이들은 우울증을 토로하고 싶은데 충분히 해소할 사람, 장소가 없다. 자기 발로 정신과를 찾아가겠나? 부모나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하겠나? 가봤자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고 대학 가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할텐데-. 아이들이 힘들어하다가 찾는 곳이 인터넷 커뮤니티다. 이 틈을 타 타인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사람들이 우울증이라는 키워드로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 아이들을 범죄로 이끄는 것이다.
가정도 중요하지만 학교의 역할도 중요할 듯한데.
학업 중단자가 누적으로 10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학교 폭력하면 다 학교에서 내쫓는 것만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청소년들이 어디로 가는지 사회 누구도 신경을 안 쓴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수업 일수를 다 채우지 못하면 1학년 1학기 끝날 때 학업 중단자라고 낙인을 딱 찍는다. 그 이후부터 그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부모가 집에 있어도 애들이 휴대폰으로 위험에 빠지는데 심지어 이런저런 사정으로 부모가 집에 없으면 어떻겠나.
아이들이 범죄에 노출되기 십상이라는 말인가.
청소년들은 이미 범죄에 노출돼 있다. 의지할 사회적인 기관이나 그런 게 없으니 커뮤니티로 모이게 되고 범죄를 노리는 쪽에서 접근한다. 이들 청소년들은 세상 물정도 모르고 경찰에 신고하는 방식도 잘 모른다. 의논할 부모도 없고 상담은 하고 싶은데 학교에서는 하지만 이들은 학교를 안 가기 때문에 상담할 곳이 없다. 유일하게 여성가족부에서 학교 밖 청소년 사업이라는 것을 하는데 애들이 자기 발로 올 리가 있겠나. 상담 기능을 국가 자격 제도화하든가 해서 아무나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울증 커뮤니티에서 소위 상담을 한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자격자들이다. 무속인들이나 사이비 종교 집단 인사들이 상담이라고 하고 있다.
그런 커뮤니티를 모니터링 하는 곳이 있지 않나.
모니터링을 꼭 해야 할 책무는 포털에게 있다. 자율적으로 하라는 것인데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가 없다. 표현의 자유 운운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영상도 지우지 않겠다고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우울증 갤러리도 폐쇄가 안 된 걸로 안다. 제재할 수 있는 법이 없다.
포털에게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외국에서도 입법을 하기 시작했다. 광고로 돈을 버는 만큼 자기 상품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자신의 상품으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당하면 그 피해에 대해서 보상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그렇게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외국의 경우 사이트에서 아이들을 성매매 하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포탈이 망한다. 인공지능이 발달했기에 의지만 있다면 더 쉽게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
사회가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
그렇다. 그런 애들이 피해를 당하다가 가해자로 둔갑해서 소년원에 온다. 여자 소년원에 성매매 알선 강요죄로 들어오는 애들이 생겼다. 이게 무슨 말인가, 10대 여성이 어떻게 성범죄자가 되는가 하고 봤더니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경우였다. 가출 패밀리가 돼서 임신과 낙태를 반복하다 그 조직에 제일 어린 애들을 다시 편입시켜 그런 아이들을 이용하는 시장이 아주 공고히 굳어져 있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페미니스트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상황이 이러니 웬만한 젊은 사람들은 이 위험한 세상에 아이를 도저히 낳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자식 문제는 아니니까. 직접 눈에 보이지 않고, 나 자신과는 거리가 있는 특수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청소년들이 지금 적은 숫자가 아니다.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이제 돌이키기가 어려운 시점이 됐다. 마약에 손을 댈 정도인데-. 요새는 마약 조직에서 10대들을 구한다. 10대는 의심하기가 어려운 대상이니까. 그래 가지고는 '한 달에 1천만 원' 이런 식으로 알바 형태로 계약한다. 비행 청소년들이 마약에 점점 가담을 많이 하게 되는 지경이 됐다. 10대가 마약을 하기 시작하면 나라 망하는 것이다. 마켓에서 거래되는 약물의 수준이 위험 수위에 와 있다. 순찰을 오프라인에서 도는 건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 온라인이 이 지경인데 온라인에서 순찰을 돌아야지, 왜 바깥에서 쓸데없이 시간을 버리나. 문제는 온라인이다.
온라인에서 상담할 수 있는 자격을 국가에서 컨트롤해야 한다. 지금처럼 그냥 내버려 두는 나라가 어디 있나. 일단 국가에서 자격을 통제하고 자격이 없는 자가 그와 같은 온라인 클리닉을 차리면 상담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게 하고 실제로 순기능적인 상담을 하는지 안 하는지 정부 어디에선가 감시감독을 해야 한다. 어른들이 의사-간호사 같은 영역 싸움을 하는 동안 애들은 다 죽어나가고 있다.
청소년 범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면 격리시킬수록 인간은, 특히 10대 때는 더 괴물이 된다. 교도소로 보내는 건 대안이 아니다. 당장 눈앞에서 3년 없애버린다고 인간이 돼서 나올 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사회적인 기능이 현저히 증대돼야 되는데 지금 그게 꽉 막혀 있다. 교육부에서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공교육이라는 어떤 교육의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으면 학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되는가. 왜 모든 애들이 다 대학을 가야 하는가. 대학을 안 가되 인간이 되는 교육을 하는, 기숙사가 있는 대안학교 이런 건 왜 학력으로 인정 안 해주나. 어차피 지방의 학교는 얘들 없어 다 망할 텐데, 소규모 대안학교로 농사도 짓고 동물도 키우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뭔가.
초등생 자살률이 느는 것도 충격적이다.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초등학생 자살률이 늘었다는 점이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에서 15세 미만이 차지하는 비율이 2016년 0.3%이던 게 2021년에 1.2%로 올라갔다. 반면 60세 이상은 55.6%에서 43.8%로 줄었다. 미래를 대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진짜 주목해야 되는 통계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아동 보호를 하기 위한 각종 법률들이 다 있는 나라에서 왜 아이가 자살을 하나. 온라인 성착취나 이런 게 아이들한테 그대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 이제 교육 과정을 대폭 변경해야 되는 상황으로 보이는데 각종 예방 교육을 하고는 있으나 수박 겉핥기식으로 하고 온라인으로 빠져들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들 자신도 모르지만 부모도 잘 모르고 학교는 심지어 별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이런 게 위기 아닌가.
[이수정 교수는 누구인가]
1964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심리학 석사, 연세대학교 심리학 박사. 경찰청 과학수사 자문위원, 대검찰청 전문수사 자문위원, 한국여성심리학회 회장 등 역임. 현재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이며 각종 방송에 활발하게 출연하고 있다. 저서로는 <최신 범죄심리학>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범죄심리 해부 노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