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62조원 투입' 반도체법 합의…'韓 직접 영향 없지만 경쟁심화 부담 커져'(종합)

2030년까지 430억유로(약 62조원)를 투입해 세계 반도체 점유율을 20%로 두 배 확대한다는 목표를 담은 유럽연합(EU) 반도체법 시행 합의가 당장 우리 반도체업계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은 유럽 내 생산 공장이 없고 유럽의 시장 점유율도 낮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이 모두 반도체 제조 역량 확보에 힘쓰며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만큼 경쟁심화에 따른 우리 기업의 부담은 높아질 수 있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는 EU의 반도체법 안에 역외 기업에 대한 명시적인 차별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는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의 생산시설이 EU에 없어 직접적인 영향은 적을 수 있다"며 "다만 이번 법안을 통해 EU의 반도체 제조 역량이 강화될 경우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심화될 수는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EU내 반도체 생산설비 확충은 국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수출 기회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요인도 병존한다고 봤다.

세계 반도체 공급망 지역별 점유율을 미국(38%), 한국(16%), 일본(14%), 유럽(10%), 중국(9%), 대만(9%) 순이다. EU는 세계 반도체 수요의 20%를 차지해 미·중에 이은 3대 소비시장이지만 반도체 공급망 점유율은 10%에 불과하다. 이는 대부분 반도체 생산을 외부에 위탁하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이 많아 생산역량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도 유럽의 낮은 시장 점유율 등을 이유로 EU 반도체법이 국내 기업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경쟁 심화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나라도 약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건욱 극동대 글로벌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전체적인 공급망을 강화하는 식으로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만큼 우리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반도체 소부장이나 팹리스 등 분야를 좀 더 집중적으로 육성해서 전체적인 산업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동차 산업을 주력으로 한 유럽이 향후 늘어날 차량용 반도체 수요에 대비해 현지 생산과 공급을 늘리는 만큼 이를 참고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장은 "전기차에 탑재하는 반도체가 내연기관차의 10배나 될 정도로 향후 차량용 반도체 수요는 급증할 것"이라며 "인텔과 TSMC가 독일에 지으려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은 결국 현지 차량용 반도체 수급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을 주력으로 하는 우리도 경쟁국에 뒤지지 않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EU가 법안을 마련하는 것만으로 반도체 시장 점유율 20% 확보가 쉽지 않다는 평가도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공장을 지어야 할 이유가 충분해야 하는데, 유럽은 자동차를 제외하면 굵직한 고객이 많지 않고 인건비, 인력 확보 등 고민할 부분이 많을 수 있다"며 "EU가 향후 어떤 노력을 더하느냐에 따라 법안 실효성이 달라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EU 반도체법의 주요내용은 크게 3가지다. 우선 반도체 기술역량 강화 및 혁신 촉진을 위해 33억유로를 투입하여 유럽 반도체 실행계획을 추진한다. 실행계획에는 반도체 설계 역량 강화, 전문인력 양성 및 차세대 반도체 기술 연구에 대한 투자가 포함된다. 둘째, EU 역내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는 생산시설(통합 생산설비 및 개방형 파운드리)에 대한 보조금 지급 근거를 마련한다. 다만, 해당 시설은 EU 내에서 최초로 도입되는 설비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고 차세대 반도체에 대한 투자도 약속해야 한다.

아울러 EU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모니터링 및 위기대응 체계가 도입된다. 공급망 위기단계 발령 시에는 반도체 사업자들에게 생산 역량 등 필요한 정보를 요구하여 수집하게 되며, 통합 생산설비 및 개방형 파운드리에는 위기 관련 제품에 대한 생산의 우선순위를 지정하도록 의무화할 수 있다.

산업IT부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산업IT부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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