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선진기자
강원도 속초의료원은 지난 2월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공개채용 하면서 연봉 4억원대의 파격적인 급여조건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원자는 없었다. 현재 속초의료원 응급실은 이달 들어 월·화·수엔 문을 닫고, 나머지 목·금·토·일에만 운영하고 있다. 응급의학과 전공 제한을 없애고 최근 다섯 차례에 채용에 나섰지만 필요한 인력을 구하지 못해서다. 의료진들은 근무 여건이 열악하다고 보기 때문에 격오지 근무를 기피한다. 이 사이 주민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이고 있다.
1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2022년 전국 시도별 필수의료 취약지 실태’를 보면 ‘필수의료의 꽃’으로 불리는 외과는 전국 평균 인구 10만명당 4.47명에 불과했다. 서울(9.08명)만 유일하게 평균을 넘어선 반면 세종(2.09명)은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경북(2.31명)·충남(2.92명) 등 11개 시도가 평균보다 낮았다. 의료법에 따르면 300개 병상을 넘기는 종합병원은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등을 포함한 9개 이상의 진료과목을 갖추고 각 진료과목마다 전속하는 전문의를 둬야 한다. 310개 병상을 보유한 전남순천의료원의 경우 외과는 개설됐지만 전문의는 없다. 인천적십자병원과 통영적십자병원은 외과가 개설되지 않은 실정이다.
산부인과 전문의 수(평균 4.13명)에서도 서울(8.36명)이 평균 2배를 넘은 반면 세종(2.08명)·울산(2.22명)·충남(2.51명) 등이 크게 밑돌았다. 지방에선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더 심각한 탓에 산부인과를 운영하고 있지 않는 의료기관이 많다. 전남순천의료원·인천적십자병원·경기도의료원이천병원·통영적십자병원·강원도강릉의료원이 대표적이다. 그나마 산부인과가 개설된 대구의료원·상주적십자병원·경기도의료원안성병원도 전문의는 없다.
소위 ‘폐과 선언’을 한 소아청소년과의 상황도 나쁘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는 1.80명으로 필수의료과 중에서도 하위권이다. 서울은 4.30명인 반면 경북(0.91명)은 1명이 채 되지 않았다. 또 응급의학과 전문의 수 평균은 3.74명으로 부산(2.77명)·경남(2.96명)·전남(3.03명) 등 전국 12개 시도가 평균보다 낮았다. 지난 2월 ‘응급실 뺑뺑이’로 대구의 10대 학생이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당정은 전국 어디서나 1시간 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중증응급의료센터를 40개에서 60개로 확충하기로 한 바 있다. 전국 평균 전문의 수가 13.28명인 내과는 그나마 나은 경우다. 하지만 가장 적은 경북(7.34명)과 가장 많은 서울(26.06명)의 차이는 최대 4배에 이르렀다.
경실련이 시도별 종합병원의 전문의 수와 과목 개설률을 분석한 결과, 전남·울산·세종은 필수의료 취약지로 꼽혔다. 이들 지역은 5개 진료과목 모두가 전국 평균보다 낮았다. 특히 대전·광주·울산·세종은 지역 공공의료의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지방의료원조차 없다.
경실련은 지역 간 의료자원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정원 확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기민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은 “의대가 없는 지역에 우선적으로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등 18년째 그대로인 의대 정원을 최소 1000명 이상 증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지역의료 부족 문제의 해법을 여기에서 찾지만 의료계는 지역 의료기관의 지원이 먼저라며 이를 강력하게 반발한다.
코로나19 이후 필수의료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21대 국회에서 여야 할 것 없이 발의된 공공의대 신설 관련 법안은 총 13개에 이른다. 주로 공공의대 설치 예산 등을 국가가 지원하는 한편 의사 면허 취득 후 10년간 지역 의료기관에서 의무 복무하라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