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기자
국회의원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 서열이라는 게 존재한다. 국회의원도 다 같은 국회의원이 아니라는 얘기다.
가장 알기 쉬운 서열의 잣대는 의정활동을 경험한 횟수, 바로 선수이다.
“라떼는 말이야….”
사회에만 꼰대 캐릭터가 있는 게 아니다. 국회에서도 광범위한 경험을 토대로 자발적 선생 역할을 하는 이가 있다. 국회의원 경력이 풍부한 다선 의원들이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오래전에 경험한, 경륜 풍부한 의원들은 상임위 안에서도 발언권이 남다르다. 현직 상임위원장이 회의 진행을 매끄럽게 하지 못할 경우 자연스럽게 훈장 선생님으로 등장한다.
“내가 10년 전에 상임위원장을 할 때는, 여야 관계를….”
현직 상임위원장도 그런 경륜 풍부한 의원의 일장 연설을 마냥 무시하기 어렵다. 정치 선배의 충언을 무시하는 것은 여의도 정가의 기류를 고려할 때 예의가 없는 행동으로 취급된다.
선수를 파괴하는 서열의 강자도 있다. 이른바 대선후보들과 계파의 수장들이다. 계파의 수장은 선수가 많은 경우가 많지만, 대선주자들은 꼭 그렇지도 않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의정활동 경험은 초선으로 끝이 났다. 2027년 대선에 도전 중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현재는 초선 의원이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의정 활동 경험은 초선이 끝이다.
같은 초선의원이지만 대선 주자의 국회 의정 활동 발언은 무게감이 남다르다.
그렇다면 다선 의원들은 선수에 맞는 대접을 받게 될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른바 ‘쩜오’ 의원들의 존재 때문이다. 쩜오 의원을 거쳐서 재선 의원이 되더라도 같은 재선 의원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는 경우가 있다. 재선보다는 1.5선 의원 취급을 받는다는 얘기다.
쩜오 의원은 초선의원들 사이에서도 왠지 어깨가 위축된다. 초선의원도 다 같은 초선의원이 아니라는 무언의 시선….
쩜오 의원은 누구일까. 0.7선, 0.5선, 0.3선 등의 취급을 받는 이들을 말한다. 다른 국회의원보다는 짧은 임기를 경험하는 의원들이다.
보통의 초선의원들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진출해 4년의 임기를 보낸다. 임기 첫해는 부족한 경험 때문에 어수선한 시간을 보내지만, 의원 2년 차, 3년 차, 4년 차가 거듭될수록 제법 관록이 붙는다. 재선 의원만큼은 아니지만, 경험치가 쌓이면서 노련한 정치인의 모습을 보인다는 얘기다.
하지만 재·보궐선거를 통해 중간에 들어온 의원들은 임기 4년보다 짧은 임기(길어야 3년)를 보내게 된다. 초선의원 중에서도 경험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하위권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재·보궐선거를 통해 원내 입성한 의원들도 할 말은 있다. 당당히 지역구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뽑힌 승자이기 때문이다.
재·보궐선거를 통해 원내에 입성한 의원들보다 더욱 위축된 어깨를 지닌 이들은 비례대표, 그중에서도 승계받아 원내에 진출한 이들이다.
비례대표 승계 의원들은 보통 현직 국회의원(비례대표)이 장관직 등 국무위원이나 다른 공직을 맡게 될 경우, 교육감이나 도지사 등 다른 영역의 선거 출마를 하게 될 경우 사퇴를 한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정은혜 의원은 이수혁 의원의 주미대사 내정에 따라 2019년 10월 비례대표 의원을 승계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만 36세로 민주당 의원 중 최연소라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됐다. 2020년 4월 총선이 예정돼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비례대표 임기는 6개월 남짓에 불과했다.
2015년 8월에는 새누리당 장정은 의원이 비례대표 승계를 받아 원내에 진출했다. 그는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으로 임명돼 의원직을 사퇴한 김현숙 전 의원의 자리를 대신했다. 2016년 4월에 제20대 총선이 예정돼 있었다는 점에서 장정은 의원의 비례대표 임기 역시 1년보다 짧았다.
그렇다면 정치인 정은혜, 정치인 장정은의 임기가 가장 짧았을까.
국회의원 임기 4개월의 비례대표 승계 의원도 있다. 허윤정 의원은 2020년 1월, 20대 국회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국회의원이다. 김성수 당시 비례대표 의원이 신임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내정되면서 사퇴하게 되자 허윤정 의원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이론적으로 보면 허윤정 의원보다 짧은 임기를 지닌 비례대표 승계의원도 존재하지 않을까. 언뜻 보면 맞는 얘기지만 개정 공직선거법에서는 나오기 쉽지 않은 구조다.
이는 공직선거법 제200조 3항의 ‘의석을 승계할 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이 해산되거나 임기만료일 전 120일 이내에 궐원이 생긴 때에는 의석을 승계할 사람을 결정하지 아니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이른바 비례대표 승계 데드라인을 넘기면 해당 자리는 공석으로 머물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었던 정치인 홍의락은 2016년 2월 24일 탈당을 선언했다.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의석은 날아갔다. 하지만 민주당의 승계 의원은 나오지 않았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2016년 1월30일까지는 비례대표 의석 승계가 이뤄졌어야 하는데 데드라인을 넘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비례대표 의석을 승계하는 행운의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고, 이른바 ‘쩜오’ 의원도 추가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