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권이 돌기 시작했다'…한은 환수율 3년만 최고[BOK포커스]

오만원

2021년 8월 이후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 금리가 높아지면서 장롱과 금고 속에 쌓여있던 5만원권이 다시 환수되기 시작했다.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5만원권의 환수율(발행액 대비 환수액 비율)은 56.5%로 사상 최저 수준이었던 전년(17.4%) 대비 큰 폭으로 뛰었다. 지난해 5만원권 발행액은 총 20조642억원으로 이 가운데 11조3346억원이 환수되면서 60%에 육박하는 환수율을 기록했다. 5만원권 10장을 발행했다면 5장이 넘는 5만원권이 한은으로 되돌아왔다는 얘기다. 환수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시중에 화폐가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은은 2009년 6월23일 36년 만에 새 고액권인 5만원권 발행을 시작했다. 발행 첫해인 2009년 10조7067억8700만원이던 발행액은 2019년 26조7373억원까지 꾸준히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20조642억원으로 발행액이 줄어들었다.

5만원권 환수율은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인 2018년 67.4%로 사상 최고에 달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대면거래가 급감하면서 2019년 60.1%로 감소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에는 24.2%까지 쪼그라들더니 급기야 2021년 5만원권 환수율은 17.4%까지 곤두박질쳤다. 이는 5만원권을 처음 발행했던 2009년(7.3%)을 제외하면 역대 최저다.

특히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고 코로나19로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져 고액권을 집에 쌓아두려는 수요가 맞물리면서 5만원권 환수율이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로 인해 한때 5만원권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일부 시중은행은 5만원권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동입출금기(ATM)에 '5만원권 인출 불가' 안내문을 내걸기도 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불안 심리가 커지면서 개인과 기업 고객의 5만원권 입금이 줄어든 데다 낮은 금리 탓에 은행에 예금해도 이자가 거의 붙지 않게 되자, 관리가 용이한 5만원권으로 현금을 쌓아두려는 수요가 많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2021년 8월부터 한은의 금리인상 사이클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무엇보다 2021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1년 반 동안 기준금리가 3%포인트나 올랐다. 잇단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중 금리가 치솟으면서 집안 장롱이나 개인 금고에서 잠자고 있던 5만원권이 다시 은행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또 코로나 방역조치가 대폭 완화되면서 소비심리가 살아난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한은 정복용 발권기획팀장은 "5만원권 환수율은 2021년 17.4%로 역대 최저 수준을 나타냈지만 지난해 이어진 금리인상에 방역 완화 이후 소비심리가 살아나면서 높아지고 있다"며 "금리가 인상되면 화폐 사용이 줄면서 금융기관으로 환수되는데 은행 예금금리가 높아지면서 집안 금고에 쌓아두느니 저축하자는 심리가 작용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5만원권 다음으로 고액권인 1만원권의 지난해 환수율도 127.6%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해 1만원권 발행액은 5조2344억원이었는데 이를 훨씬 뛰어넘는 6조6813억원이 환수됐다. 이자수익을 생각하는 개인·기업이 늘고, 코로나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대면 거래가 활발, 회수율이 증가했을 것으로 한은은 추정했다.

다만 금융업계에서는 과거 5만원권 환수율이 급감한 이유를 코로나19 상황 이외에도 정부의 세금 정책에서 찾기도 한다. 금융업계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고액 자산가들의 세부담이 커지면서 금융당국이 쉽게 추적할 수 있는 형태의 자산 운용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저금리 상황이 장기간 이어져온 데다 세금정책까지 가세해 5만원권 품귀 현상을 빚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세 대상임에도 정부의 규제를 피해 이뤄지는 경제활동인 지하경제와의 상관관계도 언급된다. 이에 대해 한은 김근영 발권국장은 "현금 고액권은 익명성으로 인해 지하경제에서 사용될 것으로 추정되나 환수율과의 정확한 상관관계를 밝혀내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만원권의 환수율이 최근 증가하기는 했지만 여타 권종의 수준으로 오른 것이고, 5만원권은 저액면 권종과 다른 수요가 꾸준히 일어나는 특징이 있다"면서 "몇 년간 많이 공급됐던 화폐가 환수되는 영향이 있는 것이지 이런 경향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리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금융부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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