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경기자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의 별명은 간서치(看書痴)다.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책만 보는 바보'다. 이 책만 보는 바보는 정조 즉위 이후 중용됐지만, 그전에는 서얼 출신이라는 이유로 뛰어난 학문을 갖추고도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덕무는 글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가난한 이덕무는 겨울에도 땔감이 부족해 냉방에서 잠을 자야 했다. 하루는 글을 읽다 잠을 청하는데 너무 추운 나머지 <한서(漢書)>를 덮고, <논어(論語)>를 병풍 삼아 바람을 막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책은 그에게 인생의 설계도이며 존재의 목적 그 자체다. 달콤한 한낮의 오수나 재미난 오락거리는 그의 삶에서 중요치 않다. 우리 모두가 그토록 열망하는 재산과 음식남녀(飮食男女)의 세계조차, 그에게는 한낱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간서치라는 별명에 걸맞게 이덕무는 독서에 임하는 자세에 대하여 자신의 뜻을 명확히 밝혔으니, 특별히 네 가지를 실천하라고 강조한다.
첫째, 책이 익숙해지도록 반복하여 읽는다.
둘째, 책의 내용과 다른 관점을 비교하며 읽는다.
셋째, 책을 읽다가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스스로 해결하며 읽되, 확신하지 말고 조심한다.
넷째, 독서하다 잘못된 내용이라고 판단하면 걸러서 읽되,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독선에 빠지지 말라.
이덕무가 강조하는 독서 습관 가운데 으뜸은 역시나 반복(反復)이다. 공자 역시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고 힘주어 말한다. 여기서의 방점은 '습'에 찍힌다. 익힐 습(習)을 파자하면 깃 우(羽)와 일백 백(白)이지만, 본디 처음에는 깃 우(羽)와 스스로 자(自)인데 훗날 변형된 것이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새가 날갯짓을 연습하여 스스로 날 수 있게 성장한 모습에서 착안한 글자다.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의 날갯짓을 통해 앙상하고 가녀린 날갯죽지가 창공을 휘젓는 튼실한 날개로 변모하는 과정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인내가 스며들어 있을까. 배움에는 바로 그런 '익힘'의 담금질이 필요하다. 그 아름다운 성장에는 더디지만 힘 있는 발걸음이 느껴진다.
-김훈종, <논어로 여는 아침>, 한빛비즈, 1만6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