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전쟁]③외국에도 있는데…해석은 입맛대로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공방은 외국의 간호법 입법 사례를 둔 공방으로도 번졌다. 대한간호협회는 세계 96개국이 간호법을 갖고 있다고 분석한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독립적 간호법을 가진 나라는 11개국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이는 간호법 입법 잣대를 서로 다르게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간협은 간호사의 업무, 책임 등을 독립적으로 규율하고 있는지를 주된 기준으로 삼았다면 의협은 간호법이 완전하게 독립된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만 간호법 보유국으로 판단했다.

학계와 정부 조사 등 상대적으로 객관적 시각에서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실질적으로 우리가 참고할 만한 선진국 중에서는 간호법을 별도 법령으로 제정한 국가가 적지 않다. 대표적 국가는 영국이다. 의협은 영국을 간호법 제정국으로 보지 않았으나, 실제 학계 연구논문과 국회 검토 보고서 등은 영국을 간호법 보유국으로 보고 있다. 영국은 2001년 ‘간호와 조산 명령(The Nursing and Midwifery Order)’을 제정해 간호사와 조산사 등록, 교육, 수련을 비롯한 위원회 설립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법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실질적 간호법 제정국으로 분류된다. 주마다 간호사 면허, 교육, 직무 범위 등 규정 체계가 다소 상이하긴 하나 모든 주에 간호법이 제정돼 있어서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대표적인데, 1948년 ‘보건조산사간호사법’이 제정돼 조산사, 간호사, 준간호사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고 간호사 처우나 양성, 인재확보 등의 내용은 별도 법률에서 제시하고 있다.

간호법이 독립돼 있지 않은 대표적 국가는 프랑스다. 프랑스는 ‘공공보건법(Code de la Santa'Publique)’에 간호인력의 업무범위와 벌칙 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 벨기에는 ‘보건의료전문가의 실무에 관한 법률(law on the Practice of the Healthcare Professions)’에 간호사 면허 취득 자격요건, 업무범위 등을 규정하고 있고 핀란드는 ‘보건의료 전문가 법(The Act on health care professionals)’에서 간호인력 직종과 면허 취득 및 등록 등을 담고 있다.

일각에서는 간호법 제정이 세계적 추세라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하는 학술지 ‘입법과 정책’에 2020년 게재된 ‘입법공백과 딜레마: 간호법 제정지연의 분석’(김강현·김희정)에서는 현 의료법이 간호 환경 변화의 세계적 추세에 대응하지 못한 전근대적 규범으로 평가했고, 지난해 8월 한국법이론실무학회의 학술지 ‘법이론실무연구’에 발표된 ‘간호법 제정 필요성에 관한 소고’(송명환)에서는 “보건의료 분야와 사회 전반의 전문 직종에 개별적 법률을 인정하는 것이 세계 공통의 보편적 입법체계”라고 밝히기도 했다.

외국의 간호법 입법 사례를 단순히 우리나라에 적용해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반박도 제기된다. 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원의 2019년 논문 ‘간호 단독법 제정 필요성과 실현 방안에 관한 연구’(최성경)에서는 “해외사례를 분석하는 것이 반드시 기초연구로서 필요하나, 선진국에서 이미 하고 있으니 우리도 간호 단독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2000년대 초반 간호 단독법을 주장할 때의 동일한 프레임으로는 지금 사회에서는 공감대를 얻기 힘들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도 지난해 2월 국회 보고 자료를 통해 “국가별 법령 구조와 보건의료 법체계가 상이하므로 단순한 비교·답습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바이오헬스부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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