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기자
1998년 스티브 잡스 당시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모바일 기기(PDA)인 '뉴턴' 개발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뉴턴은 지금도 애플 최초의 모바일 기기로 기억된다. 당시는 잡스가 위기에 처한 애플을 구원하기 위해 수십종류의 애플 제품라인을 대대적으로 수술하던 때다. 게다가 뉴턴은 잡스를 해고했던 존 스컬리 전 최고경영자(CEO)가 개발을 주도했다. 많이 팔리지도 않는 뉴턴이 잡스의 눈 밖에 나는 건 당연했다.
당시 애플은 단종된 제품의 개발자들을 다른 부서로 옮기는 대신 해고했다. 그런데 뉴턴 담당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잡스는 모바일 기기 시대의 도래를 예상한 것일까. 뉴턴은 아쉬움 속에 다음을 기약하며 사라졌지만, 역사적인 유산을 남겼다. 바로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쓰이는 저전력 반도체 설계를 만든 회사가 이때 탄생했다.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2년 후인 1999년. 잡스가 야심 차게 선보인 아이맥이 애플을 위기에서 구해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더 큰 혁신이 필요했다. 마침 MP3 음악 파일 공유서비스 '냅스터'가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 시작된 MP3플레이어의 열기도 타오르기 시작했다.
애플도 MP3의 부상을 지켜봤다. 애플은 한국 기업들이 주도한 낸드 플래시메모리 기반의 플레이어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일본 도시바의 1.8인치 초소형 하드디스크에 주목했다. 애플은 주크박스를 대신할 수 있는 플레이어를 원했다. 애플은 '주머니 속의 천곡'이라는 컨셉을 잡고 수천곡을 담을 수 있는 MP3플레이어 아이팟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저장장치는 정했으니 다음 차례는 음원을 처리할 반도체였다.
애플은 애플2, 매킨토시, 파워북 등에 매번 다른 회사의 반도체를 써왔지만, 불만이 많았다. 인텔을 꺾기 위해 IBM·모토로라와 함께 만든 '파워PC'라는 중앙처리장치(CPU)를 개발했지만, 이번에도 인텔을 꺾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바일 기기의 칩 선택은 어느 때 보다 중요했다.
애플은 ST마이크로,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사이러스 로직 등 유명 반도체 회사의 제품을 테스트했다. 이들 회사의 칩은 잡스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고민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애플의 레이더망에 갓 설립된 팹리스 반도체 업체 '포탈플레이어'가 들어왔다. 포탈플레이어는 ARM의 설계에 기반한 시스템온칩(SoC)을 설계했다. 포탈플레이어가 설계한 반도체를 사용하니 다른 회사의 반도체를 사용했을 때와 비교해 음의 품질이 달랐다고 한다. 애플 직원은 포탈플레이어에 자신들이 MP3플레이어를 만들 것이며 10년 이내에 애플이 음악 관련 기업으로 변신할 것이니 같은 배를 타자고 요청했다. 애플의 계획을 들은 포탈플레이어가 흥분한 것은 당연했다. 이렇게 설립 1년 차 기업인 포탈플레이어는 잡스가 주도한 애플 최초 모바일 기기의 핵심 반도체 공급사가 됐다. 애플과 포탈플레이어는 ARM 덕분에 경쟁사와 비교해 반도체 개발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고 아이팟 개발은 속도를 냈다.
포탈플레이어는 음악시장을 지배하겠다는 애플의 원대한 계획을 위해 헌신했다. 2001년 출시한 아이팟(하드디스크를 사용한 클래식 버전)은 대박이 났다. 아이팟은 MP3플레이어 시장을 '애플 운동장'으로 만들었다. 아이팟이 아닌 MP3플레이어들은 속속 사라졌다. 아이팟은 애플이 성공시킨 첫 모바일 기기다. 아이폰, 아이패드를 앞세운 애플의 위상은 아이팟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팟은 ARM의 부상과 모바일 용 저전력 반도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아이팟 판매가 늘어날수록 반도체를 단독 공급한 포탈플레이어의 실적도 덩달아 치솟았다. 전 세계가 아이팟의 ‘심장’에 주목했다. 포탈플레이어에 돈을 대겠다는 벤처캐피탈들이 줄을 섰다. 애플은 포탈플레이어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포탈플레이어 매출의 90%가 애플에서 나왔다.
아이팟 후광으로 포탈플레이어는 2004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애플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회사에 투자가 몰리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최초 목표한 공모가는 주당 11~13달러였지만 어느덧 14~16달러로 높아졌다. 수요 예측을 거친 최종공모가는 17달러였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포탈플레이어 상장 첫날, 주가는 장중 62%나 치솟아 27달러에 달했다. 종가는 공모가 대비 52% 상승한 25.8달러. IPO는 대성공이었다. 모든 것이 장밋빛일 것만 같았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아이팟 판매량이 2003년에서 2008년 사이 57%나 증가할 것이라며 포탈플레이어의 수혜를 점쳤다. 이때 포탈플레이어는 IPO 서류에 경고를 담았다. 애플이 자체 개발 칩이나 타사 칩으로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아무도 이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샴페인을 터뜨릴 시간도 부족했다.
2023년 현재 포탈플레이어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쯤이면 더욱 훌륭한 반도체를 만드는 대단한 반도체 회사가 되지 않았을까? 현실은 달랐다. 포탈플레이어는 2006년 지금은 그래픽과 AI 용 칩을 설계하는 엔비디아에 헐값에 인수되며 사라졌다.
'탈애플'을 꿈꾼 포탈플레이어는 아이팟용 칩 업체라는 틀에서 벗어나길 원했고 애플과 충돌했다. 애플은 결단했다. 매출의 90%를 애플에 기댔던 포탈플레이어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애플에는 믿는 대안이 있었다. 삼성이다.
애플은 포탈플레이어의 칩 대신 '아이팟 나노' 2세대에서 삼성전자가 만든 칩을 사용했다. 아이팟나노 2가 출시된 후에야 삼성의 칩이 사용됐음이 드러났다.
포탈플레이어의 몰락 후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애플을 통해 날개를 달았다. 삼성은 메모리와 음원 처리용 반도체를 애플에 공급하며 낸드 플래시메모리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막 시작한 파운드리 사업에서 본격적인 성과를 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일각에서는 이때부터 애플과 삼성의 갈등 씨앗이 태동했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삼성도 MP3플레이어 '옙'을 생산하고 있었다. 삼성 MP3플레이어 사업부 입장에서는 삼성이 애플에 더 싼값에 낸드플래시를 공급했다는 불만도 제기했지만, 삼성이 애플에 공급했던 칩을 자사 MP3플레이어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간과됐다. 우려와 달리 삼성은 아이팟 나노에 대응하기 위한 MP3플레이어에 엔비디아가 설계한 '테그라(Tegra)' 칩을 사용했다. 테그라는 엔비디아에 인수된 포탈플레이어의 기술에 기반하고 있었다. 테그라는 모바일 기기 시장에 진출하려던 엔비디아의 회심의 카드였지만 시장에서 사라진 패배자였다. 테그라도 삼성의 MP3플레이어도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팟은 애플이 PC에서 벗어나 모바일이라는 더 큰 행보를 디디는 기반이 됐다. 아이팟의 성공 속에 애플은 조용히 아이폰 개발을 시작했다. 애플은 아이팟을 통해 모바일 기기에서 반도체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반도체 설계 능력이 없어 전문 기업과 협력을 했지만 이내 자체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뉴턴과 포탈플레이어의 희생이 애플 실리콘의 시발점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자체 반도체 개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됐다. 해답은 인수합병이었다. 그렇게 애플의 자체 모바일 칩 A시리즈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