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환기자
[아시아경제 이명환 기자] "글씨 연습은 이면지에 볼펜만 있으면 됩니다. 한 달에 불과 몇천원도 안 들고, 언제 어디서나 남는 시간에, 아무 때나 할 수 있죠."
구본진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변호사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필사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뇌 건강과 내면을 발달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구 변호사는 '국내 1호 필적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국내에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한글 필적학을 학문으로써 연구했다. 필적학은 글씨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연구 방법으로, 글자의 모양이나 크기, 기울기, 간격 등을 세밀하게 분석해 개인의 성향이나 내면을 파악하는 데 쓰인다. 법조계 경력만 30년에 가까운 율사가 필적학의 매력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구 변호사는 강력부 검사 출신이다. 강력부에 근무하면서 살인이나 강도, 마약 등 흉악범들을 마주할 일이 잦았다. 수사를 위해 자술서를 받아보던 그는 일반인들과 다른 강력범들의 이상한 글씨체에 눈길이 갔다. 글씨가 삐뚤빼뚤하거나 간격이 일정하지 못한 필체들이 많았던 것.
이를 계기로 필적학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해외의 필적학 서적과 논문을 손수 구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로마자 알파벳이나 일본어 등 외국 문자에 대한 필적학 연구는 활발히 진행됐지만, 한글 필적학에 대해선 연구가 전무했던 시절이었다.
그는 우선 글씨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가 면우 곽종석 선생의 글씨를 선물받은 것으로부터 시작해 독립운동가들의 친필 수집을 시작했다. 이후 범위를 넓혀 친일파와 유명 인사들의 글씨까지 수집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구 변호사의 집무실은 직접 수집한 유명인들의 친필 서첩으로 가득하다. 이를 바탕으로 구 변호사는 지금까지 20년 넘게 한글 필적학을 연구해왔다.
언뜻 보면 비과학적으로 보이는 필적학은 이미 외국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스위스에서 발생한 폭탄테러 사건에서 용의자가 보낸 편지의 필적을 분석해 용의자를 특정했는데, 결국 그가 자백하면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됐다. 미국의 탄저균 우편 테러 사건 때도 연방수사국(FBI)이 필적 분석을 통해 용의자를 특정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사건 해결을 위해 필적 분석을 활용하기도 한다.
구 변호사는 무엇보다도 필적을 통해 사람의 내면이 드러난다고 이야기한다. 말투나 눈빛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보다도 글씨를 통해서 사람의 내면을 더 많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글씨의 간격이나 방향, 자음과 모음의 모양 등으로 사람의 내·외향적인 모습이나 결단력을 확인할 수 있다고 구 변호사는 설명했다.
필체를 바꾸면 사람의 내면도 바뀔 수 있을까? 구 변호사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자신있게 답했다. 예로부터 동양에서 서예를 통해 인격을 수양했던 것처럼, 하루 한 번 꾸준히 필체를 바꾸는 연습을 통해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구 변호사가 뽑는 최고의 필체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글씨다. 정 명예회장의 글씨체는 전형적인 '부자의 글씨'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구 변호사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필체는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며 "가로선이 긴 것은 인내심을, 꽉 닫는 자음의 모양은 결단력을, 글씨가 우상향하는 건 긍정적인 사고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비슷한 필체를 보인다고 구 변호사는 설명했다.
반면 피해야 하는 필체도 있다. 우선 알아보기 힘든 글씨체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역할을 못 하기에 피해야 한다. 글을 써 내려갈수록 우하향하는 글씨체도 비판적으로 읽힐 수 있기에 지양하는 것이 좋다.
글씨 연습만큼 뇌 건강과 인격 수양에 도움이 되는 방법은 없다고 구 변호사는 강조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뇌 건강을 지키고 내면을 발달시키는 좋은 방법이라는 이유에서다. 그가 추천하는 방법은 하루에 20분 정도 꾸준히 필사하는 것. 그는 "하루에 천자를 쓰면 20분이 조금 안 된다"며 "이렇게 6주에서 8주 정도 연습한다면 사람의 뇌가 바뀌면서 굉장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내면을 바꾸는 데도 글씨 연습만 한 방법이 없다고 그는 조언했다. 글씨에는 커뮤니케이션과 내면 변화라는 두 가지 기능이 있는데, 정보기술(IT)이 발달하면서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기능은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내면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 글씨 연습은 여전히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구 변호사는 강조했다. 그는 "필사를 한다고 할 때 바람직한 글씨체나 내가 바라는 인간상을 나타내는 글씨체를 연습한다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구 변호사의 주요 약력이다.
▶1965년 서울생 ▶서울대학교 사법학과 학사, 동 대학원 법학과 박사 ▶사법시험 30회, 사법연수원 20기 ▶대검 정보통신과장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장 ▶울산지검 차장검사 ▶서울남부지검 차장검사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현 법무법인 로플렉스 대표변호사,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