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기자
[아시아경제 최태원 기자] 설 연휴가 끝난 후 첫 출근길인 지난 25일 오전 8시께 서울 마포구 공덕역 사거리. 차량 신호가 적신호라면 우회전 시에도 일시정지 의무가 생겼지만, 운전자들은 속도만 줄인 채 우회전을 이어갔다. 마포역 방향 우회전 차선에선 차량 4대가 연달아 자연스레 우회전을 이어가기도 했다. 출근길에 만난 김모씨(27)는 "우회전 강화됐다는 걸 처음 듣는데 차들을 보면 뭐가 강화된 건지 전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곳에서도 혼란은 이어졌다. 27일 오전 9시께 서울시내에서 유일하게 우회전 신호등이 설치된 동작구 신상도초교사거리에선 신호를 지키며 우회전을 진행하는 운전자는 절반 채 되지 않았다. 버스 운전자까지 우회전 신호가 적신호임인데도 횡단보도 위 보행자가 없자 바로 우회전을 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우회전 신호등 인근 식당 주인 박모씨(42)는 "나는 여기서 일을 하다 보니 지키려고 한다. 그런데 지나가는 차들을 보면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우회전 규정 강화를 골자로 한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된 첫 주, 운전자들은 변경 사항 숙지나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2일부터 시행된 변경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전방 차량 신호가 빨간불일 때 운전자는 일단 정지선 앞에 멈춰야 한다. 이후 전방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없으면 우회전할 수 있고, 보행자가 있다면 횡단이 완료된 후 진행이 가능하다. 전방 차량 신호가 초록색일 경우에는 차량 흐름에 방해되지 않도록 서행하면서 우회전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승용차는 6만원, 승합차는 7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경찰은 오는 4월21일까지 3개월 동안 계도 기간을 거친 뒤, 본격적인 단속에 나선다.
우회전 신호등은 전국 15개 장소에 설치돼 시범 운영된다. 우회전 신호등 추가 설치 계획은 시범 운영 종료 후 각 지자체와 경찰이 논의를 통해 정한다.
현재 시범 운영이 되는 곳은 동작구 신상도초교사거리 등 서울 1곳과 영도구 영선소방서사거리, 연제구 부산은행연서지점 등 부산 2곳, 미추홀구 주안사거리, 부평구 신촌초교, 부평구 백운고가교, 부평구 동수지하차도 위 등 인천 4곳, 유성구 원신흥동 작은내수변공원, 서구 용소네거리 등 대전 2곳, 남구 새터삼거리 등 울산 1곳, 부천 송내역, 수원 성대역사거리, 남양주 가운지구 입구사거리 등 경기 3곳, 춘천 춘일감리교회사거리, 원주시 늘품사거리 등 강원 2곳이다.
많은 운전자들은 이같이 변경된 규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적신호임에도 횡단보도 앞에서 우회전할 때 멈춰 서지 않고 진행하는 운전자가 상당수였다. 일시정지 없이 행인들이 횡단보도를 채 떠나기 전 우회전하는 차량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우회전 신호를 무시한 채 보행자 신호가 적신호가 되자마자 우회전에 나서는 이들도 줄을 이었다.
시민들은 충분하지 못한 홍보에 아쉬움 표했다. 홍대입구역 인근 한 카페 매니저 김모씨(59)는 “작년에 바뀌었다는 건 알긴 알았는데 또 바뀐 건 처음 듣는다”며 “또 뭐가 바뀐다는 건지 너무 헷갈린다. 바꾸면 제대로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신상도초교 인근에서 근무하는 약사 김모씨(58)도 "(우회전 신호등이)있는 건 아는데 왜 생겼는지, 무슨 법이 바뀌었는 지는 들은 바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국민 홍보와 함께 계도기간만큼이라도 경찰이 적극적으로 현장 홍보와 계도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재원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석달간 계도기간이 있는 동안 (교통 경찰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한 번씩 이야기해 줄 수 있도록 하는 게 낫다. 계도 기간이 끝나면 바로 딱지를 끊어야 하기 때문"이라며 현장 홍보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도 “뉴스를 안 보는 이들도 있고, 뉴스만으론 완벽히 규정을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며 “계도 기간만큼이라도 교통경찰들이 현장에 많이 나가 적극적으로 개정된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