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기자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사무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건물들이 점차 흉물스러운 것이 되고 있어요. 고쳐야 합니다."
미국 대형 투자은행 캔터 피츠제럴드의 하워드 루트닉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패널 토론 중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재택근무와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의 확산으로 사무실에 나오는 직장인의 수가 크게 줄어들자 건물이 텅 비고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가 폭락한 점을 고려해 한 말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글로벌 부동산 그룹 JLL의 크리스티안 울브리히 회장도 "건물을 어떤 식으로든 용도 변경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건물이 비어 철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론 참가자들은 사용도가 낮은 사무실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하는 것이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는 만큼 이를 공공 기관 등에서 재정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직장인이 줄어 활기를 잃은 도시가 다시 활력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외신은 전했다.
미국에서 비어있는 사무실 건물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주택으로 개조하는 것을 비롯해 체육관, 영화 세트장까지 사무실로 사용되던 공간이 다양한 용도로 변하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회사 CBRE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무실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는 2017~2021년 매해 평균 39건 이뤄졌다. 하지만 2022년 중 마무리된 사무실 전환 프로젝트가 42건,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21건이었으며 올해는 85건이 진행 중, 14건이 계획돼 있다.
미국 내에서 사무실 공실률이 높은 뉴욕시와 샌프란시스코시 등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가뜩이나 도심 속 주택 공간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텅 비어있는 사무실 공간을 주택으로 전환하는 것이 상업용 부동산도 활용하고 주택도 늘릴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뉴욕시는 지난 9일 활용도가 낮은 사무실을 주택으로 전환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1990년 12월 31일 이전에 지어진 사무실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환하는 것과 관련한 규정을 완화하는 등 조처를 하겠다는 것이 뉴욕시의 입장이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주택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비교적 덜 사용하는 사무실 공간이 제공한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사상 최대 사무실 공실률을 기록한 샌프란시스코도 사무실 공간을 주택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CNBC방송에 따르면 맷 해니 민주당 주 하원의원은 "빈 건물을 그대로 놔둘 수 없다. 이건 우리 도심에 좋지 않다. 완전히 쓰레기가 되는 것"이라면서 "분명한 건 주택 위기라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지점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사무실로 쓰이던 건물을 주거용 공간이 아닌 다른 용도로 전환하고 있다. 사무실 건물이 주거용에는 부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가 번스타인 매니지먼트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워싱턴DC에 있는 사무실 건물 20개 중 주거용으로 전환이 가능한 곳은 1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분석으로는 뉴욕 사무실 중 주거용으로 개조 가능한 곳은 3% 수준으로 집계됐다.
NYT는 "사무실을 주택용으로 개조하는 데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고 건축법상 요구 사항이 많아 이를 지키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에 미전역에 비어있는 사무실 공간은 지난해부터 영화 세트장이나 창고, 체육관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뉴욕의 영화 및 TV 프로그램 촬영 장소 제공 업체인 백롯은 빈 사무실 공간을 촬영 장소로 섭외해 활용하고 있다. 개인 운동 공간을 대여해주는 캐나다 업체 실로핏은 마이애미 등에 빈 사무실 공간을 개조해 활용하고 있다. 도심에 부족한 개인 창고로 활용하는 업체도 있다고 NYT는 전했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트레이시 해이든 로 연구원은 "도시에 따라 사무실 공간의 잉여 비중이 20~40% 수준"이라면서 "아무도 이 엄청난 규모의 1980년대 사무실 공간을 어떻게 재사용할지를 알아내지 못한 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기능적으로는 당장 쓸모가 없어진 건물을 어떻게 하면 그 가치를 잃지 않도록 할지 알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