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원기자
고용노동부가 올해 3분기까지 '노동조합 회계공시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노동계의 반대가 큰 부분 근로자 대표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개혁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한편, 노사의 불법·부조리한 관행도 과감하게 없앤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또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요건을 명확히 하기 위한 법 개정에 나서고,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에도 집중하기로 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같은 내용의 업무보고를 했다. 고용부는 업무보고 자료에서 노동개혁의 성공적인 완수를 우선 과제로 들면서 노조 회계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1일 노조 부패를 한국 사회의 3대 부패 중 하나로 규정한 뒤 고용부가 곧바로 '노조 재정 투명성 강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는데, 새해 업무보고에서도 같은 내용이 주요 과제로 언급됐다.
고용부는 이달 31일까지 노조 자율점검 기간을 차질 없이 운영하고, 노조 회계감사원의 독립성·전문성 제고 등을 위해 노동조합법 시행령도 3월까지 개정한다. 노조 회계를 외부에 공시할 수 있는 시스템은 3분기 구축을 목표로 추진하되, 당장 법적 근거가 없는 만큼 노조의 자율적인 공시를 유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공시 대상과 항목, 절차 등을 담은 입법안을 조속히 마련해 2월 중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근로자대표의 민주적 선출 절차와 권한 등을 명확히 규정하고, 사업장 내에서 특정 직군·직종 근로자가 근로시간 제도 등 자신에게 맞는 근로조건을 결정할 수 있도록 '부분 근로자 대표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권고한 것으로, 노동계 일각에선 이 제도가 도입되면 사용자가 특정 직무·직군의 동의만 받아도 임금체계나 근로시간을 개편할 수 있기 때문에 근로자의 교섭력이 떨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파견근로자 차별 해소, 파견 대상 업무 확대, 파견·도급 구별기준 법제화 등 파견제도 선진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합리적 노사관계 지원을 위해 대체근로, 노조설립, 단체교섭 등 제도 전반에 대한 개편 방안을 마련한다. 당장 이달부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연구회를 구성해 의견수렴과 논의를 거친 뒤 상반기 중 정부안을 만들 계획이다.
산업계의 반발이 컸던 중대재해처벌법 개편 작업도 속도를 낸다. 고용부는 이달부터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지난 1년간의 시행 성과를 평가하고, 처벌요건 명확화 및 제재 방식 개선 등을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중대재해가 크게 줄지 않았던 만큼 전반적인 개정이 이뤄질 전망이다. 정부는 대신 노사가 함께 사업장 내 위험요인을 파악해 개선하는 '위험성 평가' 제도를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4820억원을 투입해 위험 공정 개선도 지원할 예정이다.
노동개혁 과제인 근로시간 개선은 다음달 중 입법예고를 실시한다. 근로자의 선택권을 확대하면서 세계적인 기준에 맞도록 근로시간 관리단위를 현재 '주 단위'에서 최대 '연 단위'까지 다양화하고, 선택근로제 정산기간을 전 업종 대상 3개월로 확대한다. 노동계의 '일 폭탄' 우려를 고려해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보장 등 건강권 보호방안도 병행할 예정이다.
폭력 등을 통한 노조의 활동 방해와 노조 재정 부정사용, 포괄임금제 오남용 등 불법·부당행위 전반을 신고받는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는 오는 20일부터 고용부 홈페이지에 신설한다. 이와 함께 포괄임금 오남용, 임금체불, 부당노동행위, 불공정 채용, 직장 내 괴롭힘 등 노동시장의 5대 불법·부조리 근절을 위한 감독도 강화한다. 특히 '공짜 야근'을 유발하는 포괄임금제에 대한 종합 대책을 다음달 중 마련하고, 상습적인 임금체불에 대해서도 제재 강화 방안을 1분기 중 만들 계획이다.
고용부는 노사관계, 노동법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상생임금위원회'를 이달 발족한다. 위원회는 임금체계 개편과 격차 해소를 촉진하기 위한 법, 제도, 정책 개선방안과 임금체계 개편 기업에 대해 정부 지원을 차등화하는 등의 제도적 지원방안을 논의한다. 또 인사·노무 역량이 취약한 중소기업도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확대하고, 임금정보시스템을 연내 구축해 업종·직종별로 노사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할 방침이다.
올해 경기침체 등으로 일자리 불확실성이 커질 우려가 있는 만큼 인력수급 미스매치 해소와 핵심인력 양성에도 노력한다. 우선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1만명의 외국인력을 도입해 구인난을 해소한다. 고용허가제를 20년 만에 개편해 50인 미만 제조업 사업장의 외국인력 허용 한도를 20%로 상향하고 외국인 고용허용 업종도 확대한다. 숙련도 높은 외국인력을 우대하는 장기근속 특례제도를 신설해 국내에 10년 이상 머무르면서 일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
또 반도체·조선업에 '업종별 취업지원허브'를 설치해 인력 수요를 신속히 파악·지원하고, 혁신훈련 분야를 기존 디지털 분야에서 반도체·바이오 등 첨단산업분야까지 확대해 현장형 핵심인력 양성 규모를 3만6000명으로 늘린다. 고용 취약계층에는 일자리 기회를 보장한다. 구직단념자를 뜻하는 '니트족'이 늘지 않도록 청년 대상 프로그램을 고도화하고, 고령자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계속 고용 법제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본격 착수한다.
권기섭 고용부 차관은 "올해 상반기에는 고용 상황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범정부 일자리 TF를 가동해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겠다"며 "산업 인구구조 전환과 미래 일자리 대응에 발맞춰, 일자리 정책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담은 고용정책기본계획도 이달 중에 수립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