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기자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들이 코로나19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확산한 재택근무 여파로 미국 도심의 사무실 수요가 크게 줄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타격을 입은 것이다. 미국 내 상업용 부동산 가치 손실만 6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 침체 우려로 기업들이 속속 사무실 복귀를 명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이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있어, 직장의 변화라는 큰 흐름 속에 미국의 도시의 모습마저 바꿔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비영리 연구기관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지난해 9월 아르핏 굽타 뉴욕대 교수 등이 연구, 작성한 '재택근무와 사무실 부동산의 종말(apocalypse)'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8일(현지시간)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까지 90%를 넘겼던 미국의 10대 도시 사무실 사용률은 코로나19 발병 직후 10%대로 줄었고, 지난해 7월 기준 40%대에 머무르고 있다. 연구진은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임대 수익이 17%포인트 감소해 미국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가 4530억달러(약 578조원) 손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기업의 사무실 복귀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다. 애플을 비롯한 빅테크 기업은 물론 JP모건 등 월가의 금융사들도 나서서 재택근무를 하던 직원들에게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했다. 하지만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그 여파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시내가 유령도시처럼 느껴진다"면서 "대부분의 도심은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도심 속에서 직장인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휴대전화 사용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미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 등에 따르면 UC버클리 행정학연구소(IGS)가 조사한 도심 내 휴대전화 사용 데이터 규모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5월 대비 지난해 5월 샌프란시스코는 31%에 불과했다. 시카고가 43%, 실리콘밸리가 있는 산호세는 50% 수준이다. 뉴욕은 78%로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100%로 회복하지 못했다.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줄어드니 대중교통 이용도 감소했다. 미국 뉴욕시의 대중교통 운영을 책임지는 메트로폴리탄 교통공사(MTA)는 홈페이지에 매일 탑승객 수를 공개하면서 팬데믹 이전에 비해 얼마나 회복됐는지 여부를 표시한다. 이를 보면 현재 평일 기준으로 60~70%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9월 초 노동절을 기점으로 재택근무를 하던 회사 다수가 사무실 복귀를 명했고 대중교통 이용률이 다소 올라가는 듯 보였지만 과거만큼 완전한 회복은 하지 못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샌프란시스코가 재택근무와 기술 업계의 대대적인 감원으로 타격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는 72%가 사무실 기반의 산업으로 경제가 돌아간다. 미국 부동산 기업 CBRE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샌프란시스코 시의 사무실 공실률은 25.5%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팬데믹 초기 4% 수준이었던 공실률이 2021년 9월 20%였는데 1년 새 추가로 더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됐지만 사무실은 오히려 더 비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적인 건물인 세일즈포스 타워가 전체 61층 중 일부가 비어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세 들어 있던 기업들이 빠져나가고 수익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세일즈포스가 최근 인력을 대대적으로 줄이고 있는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팬데믹 이후의 현실 속에 놓여있고 이는 곧 모든 기업이 자신을 개조해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샌프란시스코 도심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도 마찬가지다.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플랫폼도 지난해 10월 뉴욕 맨해튼 내 사무실 한 곳과 계약을 종료키로 했다. 당초 예정됐던 사무 공간 확대 방침도 일부 철회하기로 했다. 뉴욕주는 지난해 10월 세수 관련 자료를 통해 "금융 서비스 부문이 사무실 복귀를 주도했지만, 다수의 기업은 여전히 부분적으로 원격 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NBER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진 중 한 사람인 스테인 반 니우어르뷔르흐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난해 말 뉴욕타임스(NYT)에 "많은 세입자가 완전 재택근무로 가면서 계약을 갱신하지 않거나 계약을 하더라도 더 적은 공간으로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