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안전운임제' 일몰 D-15...동상이몽 속 폐지 가닥

국토부 '안전' vs 화물연대 '운임'
1·2차 파업 10.4조 손실
노정 장기간 갈등 지속에
3년 연장안 국회 통과 불투명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이현주 기자] ‘도로 위의 최저임금’이라고 불리는 안전운임제의 일몰 기한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정부가 연장 대신 폐지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파악되고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할 국회마저 여야 간 대립각이 여전해 ‘3년 연장안’은 백지화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대로라면 노사정 협상의 산물로 여겨졌던 안전운임제는 정부와 화물연대의 강 대 강 대치 속에 최장 기간 파업 기록, 10조원이 넘는 경제손실이라는 상처만을 남기고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안전’ 위해 최소 운임 보장했지만… 사고 늘어=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화물차 시장은 등록제로 운영됐다. 하지만 택배 사업 성장, 온라인 쇼핑 활성화 등으로 화물운송 수요가 급격히 늘자 수급 불균형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만개하는 택배 시장을 보고 너도나도 대출을 받아 화물차를 마련했고 이로 인해 화물운송 비용은 빠르게 하락하고 시장은 포화상태가 됐다. 결국 2003년 물류대란을 맞게 된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2004년 화물차의 등록제가 아닌 허가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화물차 운송 사업을 하려면 개인택시처럼 일종의 번호판을 부여받아야 하는 것이다. 화물차주들은 번호판 값을 보전하려고 더 많은 화물을 운송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졸음운전과 과속, 과적이었고 이것이 누적돼 대형사고로 이어졌다.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최저임금 도입과 맞물려 안전한 운행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3년 시한부의 안전운임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전운임제 시행 결과 2017~2021년 화물차 관련 교통사고는 오히려 3.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사망자수는 17% 줄었지만 치사율은 여전히 3~4%대였다. 다만 화물차주 수입과 근로 여건은 개선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교통연구원은 ‘화물차 성과분석용역’ 보고서를 통해 컨테이너 화물차주 월평균 순수입이 2019년 300만원에서 2021년 373만원으로, 시멘트 화물차주 순수입이 2019년 301만원에서 2021년 424만원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10.4조 손실·최장 파업… 상처만 남기고 빈손 철회= 상황이 이렇자 현 정부는 안전운임제 도입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다며 연장 불가 방침을 밝혔다. 지난 6월 화물연대 1차 파업의 시발점이었다. 당시 정부와 화물연대 간 극적 합의로 8일간의 1차 파업이 끝났지만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노정 간 동상이몽이 연출됐다. 정부는 안전운임제의 3년 연장에만 합의했다고 주장했고, 화물연대는 생존권을 강조하며 기간연장뿐 아니라 적용 품목 확대도 요구했다. 11월15일 비공개로 열린 교섭에서 노정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화물연대는 11월24일 2차 파업을 시작해 장장 16일에 걸쳐 운송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시멘트, 철강, 석유화학, 정유 등 전 산업에 걸쳐 물류 차질을 빚자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업무개시명령 카드를 발동했다. 지난달 29일 1차에 이어 이달 8일에도 2차 명령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노정 간 갈등 격화, 이를 중재해줄 소통기구 부재 등의 문제점이 노출됐다. 압박 수위가 높아지자 화물연대는 9일 조합원 총투표를 진행했고 결국 파업을 철회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5일 올해 화물연대 파업으로 10조4000억원의 직·간접 경제손실이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결과적으로 화물연대 입장에선 두 번의 파업으로 인해 10조원이 넘는 손실을 입혔다는 오명을 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안전운임제의 연장을 약속받지도, 안전운임제 폐기 시 대체할 장치에 대한 논의의 물꼬도 트지 못했다.

◆타협점 못 찾는 국회… 정부는 연장 불가 가닥= 이제 안전운임제의 운명은 국회의 손에 달려 있다. 하지만 안전운임제를 소관하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9일 단독 심사로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을 통과시켰지만 통상 여야 합의된 법안을 먼저 상정하는 법제사법위원회 관례상 법사위에 회부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국토위 여당 간사를 맡은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화물연대 파업으로 수조 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는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3년 연장을 해주는 건 정의에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화주, 운송업자, 차주, 정부 다 같이 모여서 안전운임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안전운임제 연장안이 법사위에 계류된다고 하더라도 다시 상임위에서 의결해 본회의까지 보낼 수 있는 만큼 끝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다시 본회의로 돌아가 재적인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법안 통과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실제로 정부 쪽에서는 안전운임제 연장에 반대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물연대가 파업을 철회한 9일 국토부는 "안전운임제 연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입장글에서 "운송 거부 행위로 안전운임제 3년 연장 제안은 무효가 됐다"고 했다.

또 원 장관은 12일 기자간담회에서도 "화물연대가 파업으로 국민에게 큰 고통과 국가 경제에 손실을 끼친 마당에, (정부가) 안전운임제를 원위치하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면서 올해 말로 종료되는 안전운임제를 단순히 연장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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