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깃발·현수막 빽빽…국회 앞 ‘농성 천국’ 된 이유

갈등 수렴하는 정당 기능 상실
시위 및 궐기 형태 ‘직접행동’ 늘어
국회의원 법안가결률도 감소

[아시아경제 구채은 기자] 영하 1도의 한파가 불어닥친 지난주 목요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앞. 국회2문과 국회1문 사이 보도블럭과 6번출구와 1번 출구 인근까지는 피켓과 현수막, 깃발을 붙인 농성 천막과 텐트들이 빽빽이 들어차 이동이 어려울 정도로 혼잡했다.

‘국회 정문 앞 기자회견장’으로 쓰던 곳도 ‘노조법 2·3조 개정촉구’, ‘교육개악저지’, ‘차별금지법 결사반대’라는 현수막이 붙은 농성천막이 차지했다. ‘간호법 제정, 약속을 지켜주십시오’라는 푯말을 든 1인 시위자도 눈에 띄었다. 일부 단체들은 정문 앞이 비좁아 건너편 금산빌딩과 현대캐피탈 앞으로 천막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이날 농성 현장에서 만난 이영훈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동조합 위원장은 “월요일(5일)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했다”면서 “예산안 몇십조가 하루아침에 왔다갔다하는 시기라 절박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공무직 노동자들의 식비 등이 기본급에 산입돼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어 공무원과 복리후생 차별 철폐 예산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러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간호협회도 이날 ‘여야공통 대선공약인 간호법제정’이라고 써진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법 제정안은 여야가 대선 때 공통공약으로 내놨던 것인데 법사위에 상정조차 안 돼 답답한 마음에 계속해서 1년 넘게 1인 시위와 수요집회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간호계가 단결된 하나의 힘을 보여줬기 때문에 상임위 통과라도 된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간호협회는 법사위원장인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과 간사인 정점식 의원 지역구인 영남지역에서 지난 2일 총궐기대회를 연 바 있다.

강대강 전면전만 지속하는 국회…갈등 수렴하는 본래 기능 상실

여야가 극단적 대치와 ‘강 대 강 전면전’만을 지속하면서, 장외투쟁, 1인 시위, 천막농성, 궐기대회 형태의 ‘직접행동’이 늘고 있다. 정치권이 사회의 갈등을 수렴하는 본래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이해관계자 집단이 거리로 나서는 형태의 직접행동이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집회 및 시위 신고 건수는 2020년 기준 13만8636건이다. 전년 대비(12만9637건) 7% 늘었다. 2016년(8만3427건), 2017년(6만8913건), 2018년(8만1358건)까지 10만건을 밑돌다가 2019년 이후 급증한 것이다. 올해 1~8월 중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위반한 불법 시위 적발 건수도 251건이다. 지난 4년 평균치인 246건을 웃도는 수치다.

정치권은 ‘일몰’이 도래하는 법안에 대한 갈등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단독으로 국토위 소위와 전체회의를 통과한 안전운임제(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와 ‘8시간 추가연장근로제(근로기준법 53조 개정안)’ 가 대표적이다. 두 법 모두 일몰제 시한이 오는 12월 31일까지다. 안전운임제의 경우 올 6월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일단락하면서 국회가 중재에 나설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민생특위나 소위가 여야 대치로 파행되면서, 제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강 대 강 대치 구도로 가면서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갈등을 증폭하고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평론가는 “서로 지지층만 보고 정치를 해서 양당 구조하에서 국민적 통합의 토대가 상실된 상태”라면서 “그러다 보니 이해관계집단의 직접행동이 늘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원 발의법안 가결률 23.06%로 7.54%P 감소

국회의사당/사진=아시아경제DB

법안 논의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법안소위가 정쟁으로 얼룩지면서, 갈등이 정치권으로 수렴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관계자는 “시기적으로 의원들이 의사록에 넣을 ‘알리바이’ 수준의 발언만 하고, 총선을 의식해 빨리 지역구 행사 갈 생각만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예전에는 소위에서 법안을 2회독, 3회독까지 하고 쟁점을 줄이기 위해 끝까지 논의해왔는데 요즘은 사실상 모든 의사결정을 당에 위임한 느낌”이라고 언급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지금은 해방 후 찬반탁 운동 때보다 더 진영 갈등이 심화된 상황”이라면서 “서로가 지지층만 보는 정치를 하다 보니, 강경파가 주도하고 치킨 게임식의 분열만 가속화되는 것”이라고 했다.

21대 국회의원들의 법안 가결률은 예년에 비해 감소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의원 발의법안 가결률은 17대(38.97%), 18대(34.55%), 19대 국회(34.62%)까지 35% 내외를 웃돌았다. 반면 21대 국회의원 발의법안 가결률은 23.06%다. 20대(2016~2020년)(30.60%)에 비해 7.54%포인트 줄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당’은 집단이익의 갈등을 해소하라고 존재하는 것인데 후기 자본주의 사회로 가면서 개인적 이익 갈등을 조정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정쟁’으로 포장되고 있다”고 봤다. 그는 “정당은 사회적 갈등을 수렴하고 축소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국회가 그 기능을 상실했고 그것이 낯선 풍경이 아니라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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