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기자
<i>"우리 집은 세금을 더 낸 가족원이 가장이 돼요. 몇 년째 제 책이 잘 팔리고 있어서 제가 가장입니다."(전혜진 작가) </i>
<i>"이야기란 '지금의 삶과는 다른 삶, 지금의 존재와는 다른 존재의 가능성을 열 수 있는 공식'이라고 생각합니다."(정보라 작가) </i>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선 아시아경제가 주최한 '제11회 여성리더스포럼'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선 '한국 여성작가들의 활약상과 의미, 가능성'을 주제로 글로벌(K-스토리) 세션 대담이 진행됐다.
이번 대담에서는 단편집 '저주토끼'로 올해 부커상 국제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가 발제자로 나섰다. 안담 작가가 좌장을 맡았고, 구독형 연재 '일간 이슬아'로 이름을 알린 이슬아 작가, SF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혜진 작가가 패널로 참석했다.
안담 작가는 세 작가 모두 구시대적 관습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작품에 담았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들었다. 이에 정 작가는 "차별이나 학대를 없애고, 모든 사람의 삶의 선택지를 늘리고, 타인을 존중하며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것을 지향했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작품에서 밥상머리 대화가 나오는데 '가녀장' 가족이 외식을 할 때 식당에서 서빙하는 종업원을 무례하게 대하는 남자에게 교육을 시키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가부장을 뒤집은 가녀장이란, 아버지가 아닌 딸이 가장이 된 집안을 뜻한다.
전 작가는 "우리 집은 세금을 더 낸 가족원이 이듬해 가장이 된다"면서 "몇 년째 책이 잘 팔리고 있어서 내가 가장"이라고 말해 좌중의 박수를 받았다.
정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 '저주토끼'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안담 작가는 "저주토끼에는 인물의 이름이 명확히 나오지 않는다"고 운을 떼자 정 작가는 "이름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만 해당되고 덜 보편적일 것 같았다"고 답했다. 정 작가는 "옛날이야기를 보면 '옛날 옛적에 어떤 마을에서' 라고 시작한다. 이 동네일 수도, 저 동네일 수도 있다"며 "남자, 여자와 같은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나니 모든 등장인물이 '사람'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세션 참석자들은 작가의 정치 행보와 정치적인 색깔을 지닌 문학 작품에 대해선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 작가가 "충분히 더 정치적인 글을 쓰고 싶다. 문학은 더 정치적이고, 정치는 더 문학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안담 작가는 이에 동의하며 "정치적이라는 게 꼭 의회정치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고 화답했다. 전 작가는 "보수와 진보적인 이야기 둘 다 존재할 수밖에 없다"며 "정치색을 완전히 배제한 이야기가 있다면 다음 세대까지 전해지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향후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조명되지 않은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정 작가는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올 것"이라며 장애 여성, 성소수자 여성, 인종적으로 한국인이 아닌 여성 등을 예로 들었다. 전 작가는 "성소수자, 장애인과 함께 가난 등의 이유로 인터넷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의 이야기도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야기란 무엇인가'라는 안담 작가의 마지막 질문에 이 작가는 "이야기란 거짓말로 진실을 가리는 것"이라고 답했다. 전 작가는 시골 할머니집을 경험해본 적 없는 자녀들이 시골집과 연관된 스티커를 붙이며 노는 모습을 보며 "이야기는 자기 마음에 있는 상을 꺼내는 것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지금의 삶과는 다른 삶, 지금의 존재와는 다른 존재의 가능성을 열 수 있는 공식"이라고 정의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