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서 'GAFA 학원'으로 전락한 日NTT, 원격근무 도입한 이유[찐비트]

(사진출처=NTT 트위터)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i># 지난 5일 오전 7시30분 NTT커뮤니케이션스의 기술전략부문 담당 사이토 모토키 과장은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을 찾았다. 두 달에 한번 도쿄 시내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고향인 홋카이도 자택에서 근무한다. 그는 1년 반 전까지만해도 '괴짜' 소리를 들으며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지금은 다른 부서에서 근무 형태에 대한 상담을 해달라고 연락을 받곤 한다.</i>

일본 통신업체 NTT가 지난 7월 원격근무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룹 전체 임직원 30만명 중 핵심 계열사 직원 3만명을 대상으로 일본 전역 안에서 원칙적으로 거주지를 제한하지 않는 근무를 할 수 있게끔 한 건데요. 사이토 씨처럼 비행기로 통근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되자 제도 도입 전 도시 지역에 단신 부임했던 직원 1500여명 중 200여명은 고향으로 돌아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8일 NTT가 공격적으로 일하는 방법과 인사 개혁에 임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는데요. 보도에 따르면 NTT는 기존에 '회사 통근 시간 2시간 이내'로 제한한 거주지 규정을 없애고, 근무 장소는 자택이나 위성 사무실 등으로 정했어요. 또 출근 시 지원하는 교통비의 상한선을 두지 않고 비행기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계열사에서 부서 상황에 따라 원격근무를 원칙으로 하는 부서를 결정하고 일부 직원의 경우 사무실에 출근하면 그 자체로 출장 취급을 하기로 했습니다.

◆ "인재 유출 막아라"…근무제도 변화가 일종의 '당근'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보수적인 인사제도로 유명한 일본에서 NTT는 왜 이처럼 파격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을까요? 1980년대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NTT가 지금은 인터넷에서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의 학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침몰한 것이 이러한 변화를 추진하게 된 배경이라고 니혼게이자이는 설명합니다. 회사의 경쟁력이 크게 악화한 원인을 인재 유출이라고 보고 이를 강화하기 위해 원격근무를 채택했다는 겁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는 코로나19로 확산한 원격근무 체제가 인재 확보를 위한 일종의 '당근'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일부 글로벌 기업들이 올해 들어 사무실 복귀를 선언하자 직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거나 원격근무 체제를 유지하는 회사로 아예 이직을 할 정도죠. 애플은 지난달 미루고 미루던 '주 3일 사무실 출근'을 지시했지만 이 마저도 직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아직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해 GAFA로 인재를 빼앗기고 있던 NTT가 원격근무 제도를 아예 도입하기로 한 겁니다. NTT 그룹의 한 관리직 사원은 니혼게이자이에 "지난번에는 구글, 이번에는 아마존"이라면서 1년 만에 30여명이 퇴사 면담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직원들이 NTT에서 기본을 배운 뒤 해외 빅테크 기업으로 이직을 한다는 것이죠. 'GAFA의 학원', NTT를 이렇게 표현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NTT에서 오랫동안 일한 한 고위급 직원은 "GAFA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인재 확보 경쟁에서 위험한 상황"이라고 한탄했다고 합니다.

NTT는 한때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는 기업이었습니다. 통신 산업의 부흥으로 1990년대까지 빠른 성장세를 보여왔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NTT는 닷컴 버블 이후 빠르게 붕괴해 지난달 말 기준 시가총액은 전 세계에서 120위로 내려왔어요. 대신 이 자리는 빅테크 기업들인 GAFA가 채웠죠.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의 시가총액은 NTT의 13배, 애플은 23배 수준입니다.

"사원이 일하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설레면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사와다 준 NTT 사장은 지난 6월 원격근무 제도 도입을 발표하면서 일하는 방식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는데요. 사와다 사장은 제도 개편의 목표로 인재들이 원하는 일명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하겠다고 여러차례 강조했습니다. NTT의 이러한 노력은 GAFA로 향하던 인재들을 다시 잡을 수 있을까요?

◆ 연공서열도 파괴…존재감 살릴 수 있을까

NTT가 추진하는 인사제도 개혁에는 원격근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 조직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채택해왔던 연공서열 시스템(근속연수나 연령에 따라 지위가 높아지는 시스템)도 무너트리기로 했는데요. 내년 4월부터 20대 직원도 관리직인 과장급 직책에 발탁하는 제도를 시작한다고 해요. 주요 그룹 계열사의 약 6만5000명을 대상으로 추진, 추후 일본 내 전 계열사로 확대할 것이라고 합니다.

NTT는 1952년 일본 정부가 설립한 일본전신전화공사에서 출발한 회사죠. 1986년 민영화 했지만 아직까지 공기업의 특성이 남아 인사제도 측면에서 연공서열의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설명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실력이 있어도 나이가 어리면 승진이 어려웠고 제대로 실력을 평가받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 NTT는 기존에 계급별로 2~3년이라는 최소 재임기간이 있었는데 이를 없애 실력만 있으면 기본 재임기간이 없이 승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동시에 승격·승급 평가 기준에 전문성 기준을 명확히 해 나이, 재직연도 보다는 전문성을 중심으로 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일본의 최대 통신 기업인 NTT가 파격적인 시도를 하는 만큼 그 결과가 일본 산업계에 미칠 영향은 클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다만 이러한 변화가 NTT의 성장에 어디까지 기여할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인사 제도 뿐 아니라 NTT라는 기업 자체의 매력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어요. 니혼게이자이는 "NTT의 추락은 일본 경제가 세계에서 빛을 잃은 '잃어버린 30년'과 (그 모습이) 겹친다"면서 "NTT의 역습은 일본이 다시 IT 분야에서 빛날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편집자주[찐비트]는 ‘정현진의 비즈니스트렌드’이자 ‘진짜 비즈니스트렌드’의 줄임말입니다. 팬데믹 이후 조직문화, 인사제도와 같은 '일(Work)'의 변화 트렌드를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외신과 해외 주요 기관들의 분석 등을 토대로 신선하고 차별화된 정보와 시각을 전달하겠습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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