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완기자
[아시아경제 김정완 기자] 'n번방 사건'이 알려진 지 3년이 지났지만, 불법 촬영 범죄가 속출하면서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말부터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텔레그램 등 법의 적용을 벗어난 해외 서버로 불법 촬영물이 유통되는 등 미흡하다는 지적이 따른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광주 광산경찰서는 여성 교사의 신체 일부를 불법 촬영한 혐의(성폭력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로 지역 모 사립고 3학년 학생 A군(18)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군은 지난 1년여간 교실 내 교탁 등지에 동영상 촬영 기능을 켠 자신의 휴대전화를 숨겨 놓는 방법으로 몰래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자체 조사 결과 A군의 휴대전화에서는 불법 촬영이 의심되는 사진과 영상물이 150여건 확인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불법 촬영 범죄는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재학생이 학내 탈의실에 카메라를 몰래 설치하고 불법 촬영을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날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에 따르면 20대 아주대 의대 재학생 B씨는 지난 6월24일 오전 아주대 의과대학 건물 내 간이 탈의실 안에 있는 개방형 수납장 한 켠에 스마트폰 모양의 카메라를 설치해 재학생들을 불법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최근 벌어진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 사건의 가해자 전주환(31)도 역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불법 촬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 오후 9시께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내부 화장실에서 자신과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였던 여성 역무원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 전씨는 과거 피해자에 대한 불법 촬영 및 스토킹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사건 당일은 해당 혐의로 1심 선고가 예정된 전날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촬영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매년 늘고 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작성한 '2021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원센터에 접수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발생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지난해 지원 건수는 총 18만8083건으로 전년 대비 1.1배가량 늘었다.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이른바 '몸캠 피싱' 피해도 급증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 제출받은 2017~2021년 사이버금융범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몸캠 피싱 피해액은 119억5000만원으로, 전년(72억7000만원) 대비 66.4% 늘었다. 피해 건수 역시 2583건에서 3026건으로 늘었다.
'n번방 사건' 이후 사법 당국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기조가 강해졌지만, 사회 전반의 성인지감수성은 여전히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만 11세 이상 만 19세 미만 아동·청소년 40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에서 성적 침해를 경험한 여성 73.8%는 '불쾌하고 화가 났다'고 응답한 반면, 남성 48.5%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답하는 등 인식 차이를 보였다.
지난해 말 디지털 성범죄 영상물 유통을 막기 위한 이른바 'n번방 방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이 시행됐지만, 정작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해외에 서버를 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불법 성 착취물에는 적용이 불가능해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인터넷 사업자의 불법 촬영물 등에 대한 유통방지 책임은 공개된 온라인 공간만 필터링 대상으로 두고 있으며, 사적 대화방 속 정보를 필터링하지 못하기 때문에 법의 적용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대선 후보 당시 범죄예방·피해구제 공약의 일환으로 전국 지자체 산하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확대 설치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부의 내년도 여성가족부 예산안에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확대 운영을 위한 예산이 별도 편성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완 기자 kjw106@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