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희기자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지난 5일은 인도 스승의 날이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정부가 주관한 스승의 날 기념 행사에서 특별한 소감을 전했다.
"인도 경제가 영국을 제쳤다. 세계 6위에서 5위로 올라섰다는 사실보다 250년 동안 우리를 지배했던 사람들을 뒤로 밀어냈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 매우 특별하다."
인도는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독립 75주년인 올해, 인도 경제는 처음으로 영국을 넘어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인도의 국내총생산(GDP)은 8547억달러로 영국 GDP(8160억달러)를 웃돌았다. 블룸버그는 달러 환율 기준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GDP 통계를 계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인도 GDP가 영국 GDP를 웃돈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간 기준으로도 인도 GDP의 세계 5위 진입이 확실시된다. 인도는 올해 2분기 GDP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이 13.5%를 기록했지만 영국은 2.9%에 그쳤다. 게다가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올해 4분기부터 내년 말까지 영국 경제가 장기간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IMF는 올해 인도 경제가 주요 20개국(G20) 중 돋보이는 7.4%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쏟아지는 장밋빛 전망…2030년엔 3위?= 영국 경제분석기관 매크로 이코노믹스는 6일자 보고서에서 내친김에 인도가 2030년까지 일본과 독일마저 제쳐 세계 3위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르면 2028년 3위로 올라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2030년까지 세계 GDP에서 신흥시장의 비중이 50%를 넘을 것이라며 인도가 이 흐름을 주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올해부터 2030년까지 인도의 연평균 실질 GDP 증가율이 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같은 날 낸 보고서에서 인도가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Baa3 신용등급이 안정적이라고 진단했다. 무디스는 인도의 실질 GDP 증가율이 2023회계연도에 7.6%에, 2024회계연도 6.3%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투자금도 인도로 쏠리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지난달 아시아 지역은 올해 처음으로 외국인 자금 순매수를 기록했다. 순매수 규모는 100억달러였는데 이 중 70억달러가 인도로 향했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3%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향후 인도가 중국을 대신해 세계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령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중국과 달리 인도는 아직 젊은 층 인구 비율이 높아 상대적으로 성장 잠재력이 크다. 인도 국가통계국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60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11년 8.6%에서 2021년 10.1%로 상승했으며 2031년 13.1%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 발표에 따르면 중국은 2020년 기준 60세 이상 인구 비율이 이미 18.7%를 기록했다.
◆반도체 부문에 100억달러 지원= 모디 총리는 2014년 5월 취임 직후부터 제조업 육성을 강조했다. 인도를 중국을 대신할 세계의 공장으로 키우겠다는 목적이었다. 그는 취임 4개월 만에 제조업 육성 정책인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를 발표했다.
모디 총리는 2019년 재선에 성공한 뒤에도 잇달아 제조업 육성 정책을 내놓았다. 재선 직후 법인세를 낮췄으며 2020년에는 제조업을 지원하기 위한 생산 연계 인센티브(PLI) 제도를 도입했다. PLI는 인도에서 생산된 제품을 기준으로 매출 증가분의 4~6%에 해당하는 금액에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을 주는 제도다.
모디 총리는 반도체 제조를 통해 인도 제조업의 가치사슬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모디 정부는 100억달러 보조금을 걸고 신규 팹(반도체 웨이퍼 생산시설) 건설을 위한 투자 유치에 나섰다.
인도가 풍부한 정보기술(IT)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미국이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인도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강력한 코로나19 봉쇄 정책 등 중국의 정책 불확실성 때문에 현지 공장 가동이 차질을 빚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도 인도의 반사효과를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 인도에 반도체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주로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했던 폭스콘의 류양웨이 회장은 지난달 투자자 회의에서 "인도에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며 "인도의 산업 환경은 발전하고 있으며 인도가 미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디 정부는 2021년 750억달러를 기록한 전자산업 매출을 2026년 3000억달러로 늘리고 이 중 1200억달러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지난달 독립기념일 행사에서 독립 100주년인 2047년까지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반도체 부문에서 후발주자인 인도가 경쟁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이 모두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52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CSA)’의 세부 시행 계획을 6일 공개했다. EU는 2030년 세계 시장 점유율 20%를 목표로 한 반도체 산업 430억유로(약 58조7036억원) 투자 계획을 마련했으며 중국도 2025년까지 자국 내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올린다는 ‘반도체 굴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인도의 열악한 기반시설도 반도체 투자 유치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공정은 매우 높은 수준의 정밀도가 필요하며 짧은 순간 전력이나 물 공급의 차단이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인도에서는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단전이 흔하며 대부분 기업은 자체 전력 공급 설비를 갖추고 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