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주기자
[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대해 국내 바이오 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이 바이오의약품 등 생명공학 분야에서 자국 내 연구와 제조를 강조하고 나선 만큼 위탁생산(CMO)·위탁개발생산(CDMO)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한국 바이오 기업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계 최대 바이오 시장인 미국 현지 진출이 빨라지고 약가 경쟁력을 갖춰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정부가 바이오의약품 등 생명공학 분야에서도 미국 내 연구와 제조를 강조하고 나선 배경에는 우선 중국에 대한 견제가 있다. 미국 상무부는 올해 2월 중국 최대 CDMO 기업인 우시바이오를 미검증리스트(UVL)에 포함시키는 제재를 가했는데, 이에 대한 연장선상이라는 게 국내 업계의 해석이다.
바이오의약품 CDMO 기업은 세계적으로 10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생산용량만 놓고 보면 베링거인겔하임(독일), 삼성바이오로직스(한국), 론자(스위스), 우시바이오, 후지필름(일본) 등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CDMO 시장은 올해 1727억달러(약 217조원)에서 2026년 2466억달러(약 310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CDMO 패권을 두고 각축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으로 관련 분야의 미국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이번 이니셔티브에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백악관은 이번 이니셔티브에 대한 설명에서 미국 생명공학 생태계를 보호한다고 밝히며 "바이오제조 공급망에 대한 외국 개입으로 위험 완화 조치를 발전시키겠다"고 명시했다.
이번 이니셔티브의 구체적 시행 방안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국내 바이오 업계는 향후 미국 시장 진출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미국의 바이오산업 시장 규모가 2027년 4301억달러(약 511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유럽 전체(2327억달러)보다도 1.8배가량 큰 수준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중심으로 세계적 전문성과 권위까지 갖추고 있어 바이오 기업으로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 바로 미국이다.
이미 미국 현지 기업을 인수한 국내 바이오 기업들도 상당수다. SK는 2018년 원료의약품 생산기업 엠팩을 인수했고, GC셀은 올해 4월 미국 세포유전자치료제 CDMO 기업 바이오센트릭을 인수했다. 이어 롯데바이오로직스는 5월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시러큐스 생산공장을, SD바이오센서는 7월 국내 바이오업계 최대 규모인 2조원에 미국 체외진단 업체 메리디언 바이오사이언스 인수계약을 체결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최대 시장인 미국 진출을 포기할 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미국 내 시설에서 제조한 의약품에만 혜택을 주는 정책이 마련된다면 현지 진출을 위한 인수합병(M&A) 등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을 활용해 국내 바이오 업계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플레 감축법에 따라 9년 이상 제네릭(복제약)이 출시되지 않은 케미컬의약품 또는 13년 넘게 바이오시밀러가 출시되지 않은 바이오의약품은 약가 협상을 벌여야 한다. 약가 협상 대상이 되는 의약품 제조사들은 자사의 바이오의약품을 협상에 참여시킬 것인지, 아니면 바이오시밀러가 시장에 출시되도록 특허 전략을 변경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미국 시장에 진입하지 못했던 바이오시밀러가 확대되는 기회가 될 수 있고, 바이오시밀러가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바이오 업계에는 호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중국 바이오 산업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하면 국내 CDMO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CDMO 업계가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만큼 이를 단기적으로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M&A, 글로벌 네트워크 확보, 연구개발 강화 등 다양한 생존 전략을 모색할 시점이 온 것 같다"고 전했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