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가 '러시아제 복제품'·ICBM이라고?[과학을읽다]

21일 2차 발사 성공 후 오해-논란 난무
액체 연료 로켓으로 순수한 우주발사체로 봐야
"러시아제 엔진 뜯어 역설계한 적 없어"
10여년간 밤새워 연구해 국산 기술로 완성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 및 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화염을 내뿜으며 우주로 날아오르고 있다. 실제 기능이 없는 위성 모사체만 실렸던 1차 발사와 달리 이번 2차 발사 누리호에는 성능검증위성과 4기의 큐브위성이 탑재됐다./고흥=사진공동취재단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지난 21일 대한민국의 첫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II)가 성공 발사된 후 많은 궁금증과 '오해'가 일어나고 있다. 누리호가 사실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느니 러시아의 엔진을 분해해 역설계한 '짝퉁'이라 국산 기술이 아니라는 등의 논란이 난무하다.

◇ 평화적 우주 이용을 위한 우주발사체

누리호는 ICBM이 아니다. ICBM은 핵탄두를 싣고 1000km 이상 궤도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적국을 타격하는 현존 최강 전략 무기다. 반면 누리호는 위성 발사, 우주 탐사 등의 목적으로 개발된 우주발사체다.

일각에선 '위성 대신 핵탄두'를 실으면 ICBM이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ICBM은 대부분 고체연료를 사용한다. 고체 연료 엔진은 구조가 비교적 간단해 개발이 쉽다. 고체 연료를 주입한 채 상온 보관이 가능해 발사 준비에 몇 분이면 된다. 운용 인력ㆍ장비도 최소화할 수 있다. 반면 재점화나 연소시간ㆍ추력 조절이 불가능하다. 추진력도 액체 엔진에 비해 작고, 목표 궤도 투입 정밀도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때문에 우주 발사체용으로 쓸 때도 저궤도 소형 위성 발사 및 추력 보강용(부스터)으로만 주로 사용된다. 마침 한국도 지난 3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고체연료 발사체의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반면 누리호와 같은 우주 발사체들은 주로 액체 연료 엔진을 사용한다. 복잡한 부품이 필요하고 개발이 까다롭다. 휘발성이 강한 연료ㆍ산화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사 당일 주입해야 한다. 고체 대비 추진력이 강해 중ㆍ고궤도 발사용으로 쓸 수 있다. 추력 조절과 재점화가 가능해 1회 발사시 여러 궤도에 다수의 위성을 투입할 수도 있으며, 스페이스X의 팰컨9 발사체처럼 비용 절감이 가능한 재활용 발사체를 만들 수 있다. 발사 준비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누리호만 해도 발사 전날 이동ㆍ기립ㆍ점검에 하루 종일 걸렸고, 발사 당일에도 연료 주입에만 4시간이 소요됐다. 만약 ICBM이 누리호처럼 그렇게 오래 외부에 노출된다면 곧바로 적의 폭격에 파괴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단 분리ㆍ추진 동력ㆍ비행 기술 등은 비슷하다. 누리호를 지하에 기지를 만들어 은폐한 후 3단부에 핵탄두를 장착해 미사일로 사용하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기존 ICBM을 개발한 국가들처럼 훨씬 편리하고 빠르게 발사할 수 있는 고체연료 엔진 발사체를 두고 누리호처럼 번거롭게 오랜 시간 작업이 불가피한 액체 엔진 발사체를 ICBM으로 사용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우리나라는 게다가 ICBM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도 보유하지 못한 상태다.

누리호는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나 우주왕복선, 유럽우주청(ESA)의 아리안5, 러시아의 소유즈처럼 평화적 우주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우주발사체일 뿐이다.

◇누리호는 러시아 발사체 복제품? No!

일각에선 누리호의 100% 국산 기술 개발 여부에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가 2013년 끝난 나로호(KSLV-I) 개발 사업때 '실수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에 놓고 간 앙카라 엔진(170t)을 거론하며 "분해해보고 역설계한 짝퉁"이라는 주장하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다. 그러나 KARI에 따르면, 누리호 엔진 개발 과정에서 해당 러시아제 엔진은 분해 또는 역설계된 적이 없다. KARI 관계자는 "엔진 외형을 관찰해 밸브 등 각 부품의 모양이나 위치를 참고하긴 했다"면서 "우리가 개발 중인 가스발생기식 엔진과 달리 다단연소사이클 방식이었다. 디젤 엔진을 만들고 싶은 데 가솔린 엔진을 들여보면 별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움이 안 됐기 때문에 분해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KARI는 누리호 개발 초기 미국, 일본 등 '우방국'들에게 우주발사체 기술 이전 가능성을 타진해봤지만 외면 당했고, 결국 독자적인 기술로 A부터 Z까지 완성해 내고 말았다. 2002년 첫 발사에 성공한 '원시적' 성능의 KSR-3호 과학로켓이 액체 엔진 기술의 토대였다. 당시 KSR-3호의 액체 엔진은 터포펌프도 없는 가압식 엔진으로 자체 무게 때문에 추진력이 떨어져 위성 발사가 불가능한 초보적 수준이었다.

이후 KARI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나로호 개발 사업과 병행해 액체 엔진의 연소기ㆍ터보펌프 등의 핵심 부품 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2010년 이후 본격화된 누리호 연구 개발로 이어졌다. 가장 고비가 된 것은 2015~2016년 발생한 엔진의 연소 불안정 현상이었다. 연료가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주파수와 연소기 고유의 주파수가 동조되면서 엔진이 파괴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러시아나 미국 등 우주 강국들의 로켓 엔진 개발 과정에서도 매번 겪었던 진통이었다. 특히 미국은 역대 최고 출력으로 유명한 아폴로 프로젝트 새턴-V 발사체에 사용한 F-1엔진 개발 당시 이 문제로 큰 홍역을 앓은 끝에 거액을 투자해 해결했었다.

KARI 기술진은 12번의 설계 변경과 수많은 실험 끝에 1년 만에 이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연구에 참여했던 KARI 관계자는 "몇날 밤을 새가면서 실험을 거듭해 연소기에 액체 산소와 케로신을 뿌려주는 분사기가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해서 수정했다"면서 "지금도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어떻게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고, 해봐야 아는 것이었다"라고 술회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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