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믿음기자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7살 무렵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공습과 배고픔, 두려움으로 채워진 유년 시절을 보낸 저자의 시집이다. 어린 날 목도했던 공포를 신비로운 한 편의 시 ‘헨젤과 그레텔의 섬’으로 승화시켰다. 일본 권위의 시 문학상인 ‘H씨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올해 1월 영면한 저자를 기념해 새롭게 출간됐다.
외로운 섬은 그 후 코끼리의 형상으로 고요히 우리를 기다려온 것이다 하늘과 반짝이는 양치식물이 있는 숲 그늘로 우리를 데려가기 위하여
-19쪽, 〈헨젤과 그레텔의 섬〉
깊은 숲속에서 양치식물의 포자가 금빛으로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부뚜막 안에서 마녀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이의 호주머니에 더는 빵 부스러기나 조약돌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짧은 여름의 끝에 그이는 죽었다 그것은 작고 투명한 유리잔 같은 여름이었다 그런 여름을 사람들은 사랑이라 부르는 듯했다
-21쪽 〈헨젤과 그레텔의 섬〉 중에서
벽 위에 작은 별처럼 남겨진 여러 개의 얼룩들이 점점이 박힌 그것들을 이어봐 어린 날 우리가 밤마다 그리던 이상한 동물들이 거기 있잖아
-47쪽, 〈나무의 집〉
헨젤과 그레텔의 섬 | 미즈노 루리코 지음 | 정수윤 옮김 | ITTA | 136쪽 | 1만2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