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기자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전국민의 주말 낮을 책임졌던 '일요일의 남자' 송해(95·송복희)가 세상을 떠났다. 평생 '딴따라'를 자처해온 그는 수려한 입담과 소탈한 웃음으로 전국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그가 노래자랑 무대를 통해 만나온 시민만 무려 1000만명에 달할 정도다.
송해는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6·25 전쟁 중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그는 1955년 창공악극단을 통해 데뷔, 66년째 연예계 현역으로 활동한 원로 방송인이다.
고인은 고령의 나이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지방 녹화를 다닐 정도로 체력이 으뜸이었으나 올해를 기점으로 건강악화가 찾아왔다. 지난 1월과 지난달 건강 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고, 지난 3월에는 코로나19에 확진 소식으로 많은 이들의 걱정을 샀다. 코로나로 한동안 중단됐던 전국노래자랑 녹화가 지난달 약 2년여만에 재개됐으나 고인은 고령의 나이와 체력 등을 이유로 제작진에 하차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별세했다.
송해는 지난 1988년 5월 전국노래자랑 경북 성주편에서 처음 마이크를 잡았다. 이한필, 이상용, 고광수, 최선규에 이어 다섯번째 전국노래자랑 MC가 된 그는 1991년 몸이 좋지 않아 6개월 쉰 것을 제외하면 말년까지 녹화에 불참한 적이 없을 정도로 성실했고, 프로그램에 진심을 다했다. 그는 지난 34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출연자, 관객과 호흡하며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프로그램의 역사만큼 화제가 된 출연자도 많다. 지난 2017년 전라남도 함평 편에 나온 한 출연자는 온몸에 벌떼를 감고 나와 '벌 아저씨'로 유명해졌고, 2019년 서울 종로구 편에 출연한 지병수 씨는 손담비의 '미쳤어'를 특유의 리듬감으로 소화해 '할(아버지)담비'라는 별명을 얻었다. 싱어송라이터 이정권은 2015년 강원 강릉시 편에서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불러 '연어장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고인이 이끌어온 전국노래자랑은 남녀노소 함께 즐기는 '세대 통합의 장'이었다. 115세의 나이로 '최고령 출연자'였던 이화례 할머니는 경기 양평편에 출연해 출중한 댄스 실력을 선보였고, 장윤정의 노래 '어머나'를 율동과 함께 깜찍하게 소화해낸 최연소 출연자 3세 심진화 양의 영상은 최근 뒤늦게 화제가 되며 조회수 600여만회를 기록했다. 무대가 끝난 뒤 울음을 터뜨린 심 양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위로하는 송해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훈훈함을 안겼다.
또 여러 트로트 스타를 배출한 명실상부 '스타 등용문'이기도 했다. 이 무대를 거쳐온 스타만 임영웅·송가인·이찬원·정동원·박상철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1993년 당시 미용사로 일하던 박상철은 삼척시 편에 출연해 최우상을 받은 뒤로 가수의 길을 걷게 됐고, 임영웅은 2016년 경기 포천시 편에 출연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송가인은 전남 진도군 편에 출연해 '정말 좋았네'를 열창해 최우수상을, 이찬원은 2008년에 13살의 나이로 첫 출연한 뒤 4수 끝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가진 게 없어도 많은 사람을 아는 게 재산"이라던 고인의 말처럼, 그의 부고가 전해진 뒤 방송으로 인연을 맺은 연예인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송가인은 이날 고인의 비보를 접한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제일 먼저 재능을 알아봐주시고 이끌어주신 선생님. 잘되고 나서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시던 감사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라며 애도를 표했다. 고인과 47년 전 처음 만났다는 개그맨 이용식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천국에 가셔서 그렇게 사랑하셨던 전국노래자랑을 이번엔 천국노래자랑으로 힘차게 외쳐주십시오. 그 어른은 바다셨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추모했다. 방송인 이현우 또한 자신이 진행하는 KBS 라디오에서 "진정한 큰별이었고 스승이었던 송해 선생님을 많이 그리워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송해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KBS 연예대상 공로상,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한국방송대상 공로상,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며, 장례는 코미디언협회 희극인장으로 치러진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