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운임제 논의' 국회 정상 작동 안해…파업 당분간 불가피

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국민 안전에 일몰은 없다! 화물연대 총파업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 일몰제 폐지, 고유가에 따른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전날 0시부터 무기한 총파업을 시작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조합원 34% 7500명 집회 참여 예정

산업계, 피해 최소화 위해 재고 마련

장기화땐 수급 문제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최대열 기자, 공병선 기자] 화물연대 파업이 이틀째를 맞으며 물류대란이 본격화하고 있다. 정부가 이번 파업이 장기화하지 않도록 화물연대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안전운임제 논의 창구인 국회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 파업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는 이번 파업 여파로 빚어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고를 마련해뒀으나 사태가 길어지면 수급에 문제가 생길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날 10시 기준 화물연대 조합원의 약 34%에 해당하는 총 7500여명이 집회에 참여할 예정이다. 총 4000여명이 지역별로 분산해 철야대기했고 부산에서는 450여명이 야간문화제를 개최했다. 이 과정에서 이날 오전 8시20분께 경기 이천 하이트진로 공장 앞에서 운송방해혐의로 화물연대 조합원 15명이 체포됐다.

정부는 아직까지 물류 차질은 빚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국 12개 항만 모두 출입구 봉쇄 없이 정상 운영 중으로, 항만별 컨테이너 장치율(69.0%)은 평시(65.8%)와 비슷한 수준이다. 장치율은 항만의 컨테이너 보관능력 대비 실제 보관된 컨테이너의 비율을 말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주요 화주·운송업체들은 집단운송거부 대비 2~3일치 물량을 사전 운송조치했으며 아직까지는 물류피해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주요 물류거점에 경찰력을 배치하여 운송방해행위 등 불법행위를 차단하고, 군위탁 컨테이너 수송 차량 등 대체운송수단을 투입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의 경우 노정 간 거리를 좁히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번 파업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0년부터 적용된 ‘화물차 안전운임제’는 화물차의 운행거리와 t당 운임 비용을 정해 놓고 택시 미터기와 같은 원리로 운송 비용을 공시하는 제도다. 정부는 안전운임제 시행을 위해 안전운송운임위원회를 통해 평균 운임을 산정했으며 시범적으로 컨테이너 트럭과 시멘트 트럭 2개 품목에 대해 이를 적용 중이다. 국토부는 화물연대 요구대로 안전운임제가 적용되는 품목을 확대하려면 차주를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고 차량이 규격화돼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컨테이너, 시멘트 등 두 트럭에 한해 제도를 시행한 이유도 차종이 정해져 있고 규격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라며 "일반 트럭의 경우 화주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결 키를 쥐고 있는 국회가 손을 놓고 있다는 상황도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이다. 품목 확대 논의 역시 국회에서 이뤄져야 하는 사안이지만 지금 여야 간 힘겨루기로 21대 후반기 국회 원 구성도 안 된 상황이다. 정부가 전날 적극적으로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국 이번 사태의 원인인 안전운임제 문제가 국회 논의를 통해 해소되지 않는 한 파업이 장기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은 이날 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앞으로 화물연대와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국회가 열린다면 안전운임제가 조속히 논의될 걸로 기대하고, 국회 논의에 따라 후속 조치를 차질없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화물연대 파업이 이틀째를 맞이하면서 산업계는 향후 장기화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파업에 앞서 며칠에 걸쳐 미리 제품을 출하하는 등 어느 정도 대비해뒀으나 사태가 길어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에 나선 것이다. 자동차업종의 경우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품 등 재고를 최소화한 적시생산방식(JIT)으로 전체 공정을 운영 중이다. 문제는 적게는 사흘, 길어도 일주일치 이하분 재고만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를 미리 확보해놨다고 가정해도 이 기간을 넘기면 정상조업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차량용 반도체 등 부품수급이 제때 안 돼 그간 완성차 조립라인을 정상적으로 가동하지 못했던 일이 빈번했다. 파업까지 겹치면서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완성차 회사들의 생산량은 더욱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일반 고객 피해로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철강·정유·조선 등 제품출하량을 쉽게 바꾸기 힘든 업종에서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짜고 있다. 일부 철강사들은 이미 7일 0시 기준으로 출하량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도 원칙대응을 기조로 한 만큼 갈등이 보다 격해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긴 힘들다"고 전했다.

시멘트 업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시멘트업계에 따르면 화물연대가 전날 시멘트 생산공장 정문과 후문을 사실상 봉쇄했던 단양, 제천, 영월, 옥계(강릉) 등 지역의 시멘트 공장은 시멘트를 실어나르는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차량 출입이 전면 통제되고 있다. 시멘트협회는 전날 시멘트 출하량이 1만5500톤(t)으로 평소(일 18만t) 대비 10% 이하로 감소한 가운데 시멘트 업계 하루 매출 손실액이 153억원(t당 9만3000원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비조합원을 상대로 한 조합원의 압력이나 그로 인한 현장에서의 갈등을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실제 조합원은 전체 화물 노동자의 5% 남짓에 불과한 데도 문제가 불거지는 건 비조합원의 정상운행 차량을 막거나 배신자로 낙인 찍는 폭력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전운임제 시행 효과를 단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정부는 당분간 강공 모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화물노동자의 노동 시간이 줄고 과적을 개선하는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교통안전 개선 효과를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평균운임상승효과 등으로 열악한 업무환경은 개선됐지만 차주의 안전한 운행으로 인한 교통안전에 대한 기여도는 낮다고 본 것이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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