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횡령]금감원 '자산 확인해야' vs 회계법인 '범죄 파악불가'

우리은행 614억원 횡령 2012년 시작돼
그해 금융당국, '회계감사기준' 개정 승인
"감사인, 부정 발견 못할 수 있다" 인정해
부정·오류 발견 책임자는 '경영진' 못 박아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금융당국과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우리은행 횡령사고가 시작된 2012년 회계감사기준을 변경한 것으로 파악됐다. ‘회계감사는 수사가 아님’을 명시하는 등 한계를 인정했는데, 이를 두고 우리은행 회계법인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금융감독원의 감리결과와 징계 여부에 따라 회계법인과의 갈등도 첨예해질 전망이다.

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2012년 말 금융위원회는 회계감사기준의 전반적인 형식 및 내용과 함께 33개 부문의 개정을 승인했다. 회계감사기준이란 기업 회계를 감사할 때 따라야 하는 규칙이다. 각 기준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작성하고 금융위의 승인을 받아 마련된다.

이 중 감사인의 목적과 수행을 규정한 ‘기준서 200’이 개정됐다. 특히 기존에는 없었던 감사의 성격이 구체화됐다. 기준서는 감사의 성격을 ‘범죄혐의를 밝히려는 공적 수사가 아니다’라고 표현했다. ‘감사인은 수색권한과 같은 특정한 법적 권한을 부여받고 있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감사인의 한계도 인정됐다. 기업과 임직원이 저지르는 부정부패에는 은폐를 위한 ‘정교하고 치밀하게 구성된 계획’이 수반되는 만큼 감사절차로 이를 발견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다. 예시로는 문서조작을 들었다. 기준서는 "감사절차는 문서가 조작된 경우 왜곡을 발견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다"며 "감사인은 문서의 진위에 대한 전문가로서 훈련을 받지 않았고 그렇게 기대될 수도 없다"고 설명했다.

‘기준서 240’도 마찬가지다. 해당 기준서는 부정에 관한 감사인의 책임을 다루고 있다. 기준서는 횡령과 같은 부정부패와 오류를 예방하고 발견할 책임이 ‘기업의 지배기구와 경영진에게 있다’고 못 박았다. 회계법인이 기업과 임직원의 범죄까지 발견할 의무는 없다는 의미다.

또 ‘감사인이 부정의 발생을 의심할 수 있고, 드물게는 이를 식별할 수도 있다’면서도 ‘부정이 실제로 발생했는지에 대하여는 법률적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감사인이 기준에 따라 적절하게 감사를 계획하고 수행해도 감사의 고유한계에 의해 재무제표의 중요한 왜곡이 발견되지 못할 위험이 있다’고 작성했다.

회계사들, 책임론에 부글부글…"이럴거면 사법권 달라"

이를 두고 우리은행 횡령사고 당시 회계감사를 맡았던 법인에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금감원은 우리은행 직원 A씨가 2012년부터 6년간 회삿돈 614억원을 횡령한 사고에 대해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2018년 마지막으로 있었던 횡령은 A씨가 문서를 조작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금감원은 우리은행에 대한 수시검사를 시작한 한편, 당시 회계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의 감리에도 착수했다. 당시 회계법인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이다.

반면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회계법인 책임론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정 원장은 지난달 29일 외국계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본적으로 회계법인은 회계감사를 하면서 시재가 확실히 존재하느냐, 재고자산으로 존재하느냐를 봐야 한다"며 "왜 회계감사를 하면서, 외부감사를 하면서 그런 것들을 놓쳤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회계법인도 자산이 실제로 있는지 살펴봐야 했었다는 취지다.

하지만 회계법인이 모든 내용을 살펴볼 수는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재고자산의 확인도 모든 회계항목에서 수행하는 게 아니라, 오류나 부정이 의심되는 특정한 경우에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금감원이 회계법인에 일부 책임을 묻게 되면 당국과 업계의 갈등이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회계법인 종사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금융당국에 대한 볼멘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문서위조는 어떤 감사절차로도 파악이 아예 불가능한 것"이라면서 "회계감사 책에 위조인감 판별법도 넣고 회계사들한테 사법권도 달라"고 비꼬았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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