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민기자
[아시아경제 류태민 기자] 신혼부부 A씨는 6개월 전 한 부동산 중개보조원의 권유로 마음에 드는 빌라 전세 계약을 맺었다가 계약금 3000만원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인터넷으로 매물을 알게 된 A씨는 중개업소에서 나온 이가 자신을 ‘이사’라고 소개하며 명함을 내밀자 별다른 의심 없이 집을 소개받고 그의 계좌로 가계약금을 보냈다. 하지만 얼마 후 일방적으로 가계약이 취소됐다고 통보받자 A씨는 계약금 반환을 요구했지만 중개보조원은 몇 개월이 지나도록 “계약금을 내 개인 사업을 위해 사용해 지금은 돈이 없다”며 “금방 돌려줄테니 기다려 달라”라는 황당한 대답만 내놓았다.
최근 ‘무자격 중개’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공인중개사가 아닌 중개보조원이 임대차 계약을 진행한 뒤 계약금·전세보증금 등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주로 부동산 관련 지식이 적은 청년이나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발생하고 있다.
중개보조원은 공인중개사를 보조하는 사람으로 보통 고객을 매물 현장으로 안내하는 등 공인중개사 업무를 보조해주는 역할이다. 별다른 자격증이 없어도 4시간 직무교육만 이수할 수 있다보니 법률상 직접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계약 내용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실장이나 이사 등 고객이 오해할 만한 직함을 명함에 찍어 혼선을 부추기기도 한다. 중개보조원이라는 개념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데다, 중개보조원들은 현장 안내 등 중개업무를 보조할 때 고객에게 자신이 ‘중개보조원’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알려야 하는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개보조원 수는 제한이 없다보니 일부 공인중개사는 한 번에 수십 명씩 채용하는 경우도 있어 관리능력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방문상담보다는 전화상담이 많아지면서 중개보조원들의 역할이 더 커졌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자료에 따르면 부동산 중개 고의사고 중 중개보조원들에 의한 사고율은 2016년 57.6%에서 2020년 67.4%까지 올랐다. 지난해의 경우 59.3%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매년 절반이 넘는 높은 수치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고용된 중개보조원의 수가 업소별 공인중개사 수를 넘어설 수 없다는 내용과 고객에게 자신이 중개보조원임을 고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아직 제도화되지는 않았다. 조세영 법무법인 로윈 변호사는 “계약사항에 대한 논의나 체결은 공인중개사만 할 수 있도록 돼있다”라며 “실제 계약을 체결하거나 금전이 오가는 상황에서는 반드시 상대방이 공인중개사인가 신분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공인중개사 여부는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류태민 기자 right@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