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도만 있으면 3D프린터로 총기 부품 척척…'유령총'의 엄습 [임주형의 테크토크]

조 바이든 美 대통령, 유령총 규제법 발표
총기 부품만 따로 구매해 조립하는 유령총
당국 감시 피하고 규제도 받지 않아
3D프린터 이용하면 사실상 추적 불가능
총기 소지 제한된 韓서도 밀반입 시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경찰이 적발한 '유령총' /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3D프린터로 찍어낸 부품을 사용자가 직접 조립해 완성해 내는 '유령총(Ghost gun)'이 국제 사회의 새로운 골칫덩이로 떠올랐습니다. 설계도와 재료만 있으면 일반 가정집에서도 총기를 만들 수 있다 보니, 민간인의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국가는 물론 이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됩니다.

유령총이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은 지난 11일(현지시간)이 처음입니다.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나라는 더 안전해져야 한다"라면서 "사법 당국이 경고를 울리고 있다. 우리 공동체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라며 유령총 규제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미 법무부가 이날 공개한 유령총 총기 규제 규정은 완제품뿐 아니라 모든 총기 부품, 총기 조립 키트에도 일련번호를 부여하도록 하는 겁니다. 또 총기 부품 판매 역시 완제품 총기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허가를 받은 거래상이 구매인의 신원을 확인한 뒤 판매하도록 할 방침입니다.

유령총은 영어로 유령(Ghost)과 총(gun)을 합쳐 만들어진 신조어로,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총기 조립 키트로 만든 일련번호 없는 총기를 뜻합니다. 전자상거래로 총기 부품만 따로 사서 사용자가 직접 조립하면, 당국의 총기 규제를 사실상 거의 회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큰 문제는 3D프린터로 부품을 '찍어낸' 총기에 있습니다. 3D프린터는 금속물질을 입체적으로 분사해 특정한 물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최근 이 기술은 총기 생산에까지 이용되고 있습니다.

3D프린터로 찍어낸 부품을 결합해 만든 총기. / 사진=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설계도를 내려받아 프린터에 입력하면 누구나 총기 부품을 양산할 수 있는 데다, 기성 부품에 일련번호를 도입하는 방식으로도 이를 검거할 수 없습니다. 또 민간인이 정부 몰래 막대한 화력을 가진 살상 무기를 제조할 위험도 있습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3D프린터를 이용해 조립한 총기는 엉성한 완성도, 내구성 문제로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었습니다. 여전히 3D프린터로 총기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거듭된 기술 발전으로 개선된 프린터가 탄생하면서 일부 중요 부품을 안정적으로 양산할 수 있게 됐고, 나머지 부품은 외부에서 구매해 조립하는 방식으로 누구나 총기를 만들 수 있게 된 겁니다.

실제 3D프린터로 유령총을 조립해서 놀다가 한 미성년자가 크게 다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16세 소년이 수제 권총 부품을 조립하던 중, 실수로 자신의 다리를 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소년은 부모 몰래 저렴한 3D프린터를 구입한 뒤, 총기 하단 부분을 프린터로 찍어 제작하고 전자상거래로 구입한 상단부를 결합해 완제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모는 아들이 3D프린터를 구입했다는 사실도, 3D프린터로 총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3D프린터 부품을 결합한 유령총을 발사하는 한 해외 유튜버 영상. 유령총의 성능은 실제 총기와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그런가 하면 지난 2019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총기 면허를 소지하지 않은 10대가 수제 총기를 만든 뒤, 또래 학생 2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유령총은 총기 면허를 소지할 수 없는 10대 미성년자도 손쉽게 총을 보유할 수 있는 데다, 민간인이 소유하기에는 지나치게 강한 화기인 군용 반자동 소총 등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됩니다.

유령총은 민간인의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국가들뿐만 아니라, 한국처럼 총포류 소지자를 철저히 제한·관리하고 있는 나라도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유령총을 밀수입하려는 시도가 적발된 바 있습니다. 지난해 7월23일 인천국제공항경찰단은 총포 도검 화약류 등 단속법 위반 혐의로 40대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20년 초부터 다음해 3월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해외 온라인 사이트에서 각종 총기 부품을 구매해 밀반입한 뒤, 총기를 제작하려 한 혐의를 받습니다. A씨는 여러 차례에 걸쳐 몰래 들여온 부품으로 권총 7정, 소총 5정 등 12정의 총기를 만들었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성능을 분석한 결과 이 수제 총기들은 일반 총기와 유사한 성능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3D프린터 총기의 확산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기 전에 통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엘런 로젠블룸 미 오레곤주 법무장관은 지난 6일 현지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사람들이 쉽고 저렴하게 총기 부품을 사거나, 설계도를 온라인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면 누구나 치명적인 무기를 추적 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라며 "심지어 3D프린터 총기는 금속탐지기 같은 감지기기를 무력화할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총기 부품들은 여전히 대다수 규제를 받고 있지 않다"라며 "통제 불가능해지기 전에 법과 규제의 '구멍'을 막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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