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1961년 미국에서 두툼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다. 이후로 미국뿐 아닌 전 세계 도시계획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저자는 제인 제이콥스라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건축이나 도시 관련 전공도 하지 않은 아마추어 저널리스트였다. 이 책이 던진 ‘도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람인가? 자동차인가?’라는 간단한 질문은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생각의 틀을 깨뜨리는 질문이었다.
당시 미국과 유럽은 2차대전 이후 도시를 재건하며 이른바 ‘빛나는 도시’라는 도시이론을 최고의 지침으로 삼고 있었다. 프랑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주창한 몽상적 도시이론이다.
‘빛나는 도시’는 낡고 불결하며 혼잡한 도심을 헐어내고 녹지가 풍부한 공원을 만들고 그 위에 고층아파트를 짓는 것이 핵심이다. 고속도로와 인터체인지를 만들고 사람은 공중 보행로로만 다니게 해 자동차가 다니기 수월하게 했다. 결과는 재앙이었다. 도심은 다시 슬럼화되고 범죄율은 치솟았다. 백인 중산층은 교외에 새로 지어진 단독 주택단지로 대거 이주하게 된다. 자동차의 보급과 교외 철도건설이 이를 부추겼다. 도심은 더욱 가파르게 슬럼화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제이콥스는 ‘빛나는 도시’가 순수한 이상과 깔끔한 조감도와 다르게 도심 공공공간이 비어져 가는 것을 목격한다.
책의 첫 부분은 도시의 긍정적 평가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도시의 기능적 질서의 복합성을 혼란이 아닌 유기적 질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리의 보도를 예를 들며 도시의 가장 중요한 공공공간이라고 규정한다. 볼거리가 늘어선 거리는 걷기의 배경이 되며,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아이들이 안전한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둘째는 도시의 다양성이야말로 도시가 갖는 힘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촘촘하게 얽힌 다양성이 경제, 사회적으로 서로를 끊임없이 지탱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도시에서 자동차의 폐해에 대해 자세하게 다룬다. 자동차 중심의 ‘빛나는 도시’는 걷는 이가 없어져 공동체가 붕괴한다는 것이다. 도로 등 공간을 자동차에 할애할수록 세금을 매길 상업시설이 줄어든다는 미국식 실용주의 관점을 보이기도 한다.
이 밖에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거리의 눈이 범죄를 예방한다는 ‘자연감시’, 아파트 등 대규모 단일 시설의 주변이 황폐해지는 ‘경계공백의 저주’ 같은 현상을 개념으로 정리한다. 당시로는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이었다.
제이콥스가 제시한, 복합성, 다양성, 유기성 등의 도시의 긍정적 특성은 이어지는 연구를 통해 ‘뉴어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냈다. 특히, 최근 서구 여러 나라에서 채택하는 친환경 컴팩트 도시이론에서는 이 책을 교과서로 삼을 정도이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은 현재의 도시계획과 재건축에 대한 하나의 비판이다."
60년의 시차를 넘어 21세기 한국에 제인 제이콥스의 비판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암울하다. 더구나 대선을 맞아 ‘빛나는 도시’ 류의 주택 수백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이 어지럽게 날리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 교수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