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이정윤기자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이정윤 기자] "대학교에서 친구·동아리·MT 무엇도 추억하고 남은 게 없어요. 기억에 남는 건 컴퓨터·태블릿 속 교수님과 이름 모를 동기들뿐이죠."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을 다닌 20학번 대학생의 푸념이다. 치열한 입시 관문을 통과해 캠퍼스의 낭만과 여유, 새로운 배움을 원하던 이들은 캠퍼스와 멀어진 채 2년을 보냈다. 학교 강의실, 도서관, 동아리방은 그들에게 너무도 먼 이름이다. 코로나 2년간 사라진 이들의 시간은 누구도 보상해줄수 없다. 추억을 앗아간 것 뿐만 아니다. 이들은 실습과 해외 경험 등 취업에 필요한 기회 조차 박탈당했다. 무너지고 있던 학생자치는 코로나19 이후 초토화 수준이다.
◆실습 못한 간호·미용학과…전문대생은 캠퍼스 구경도 못해=광주에 위치한 4년제 대학 간호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최미나씨(35). 반도체 회사를 10년가량 다니다가 암 투병 때 좋은 인상을 받고 간호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남보다 늦게 대학에 입학해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자 해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하지만 코로나19 타격에 올해 계속 비대면 수업만 진행돼 궁금한 내용이 많아도 질문하기가 어렵고 2차례 있었던 시험 때만 등교를 해 앞으로 함께 간호사 준비를 할 동기들의 얼굴조차 알지 못한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청년들은 코로나19 타격에 앞날이 깜깜해졌다고 한다. 수업이 대면으로만 이뤄진 것은 물론이며 간호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실습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내년부터 있을 실습 교육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최씨가 재학 중인 학교에는 대학 병원 등 대형 병원이 없어 다른 곳으로 실습을 나가야 하는데 코로나19 감염 우려에 간호사 실습생을 받는 걸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습을 진행하는지 조차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최씨는 "학교 선배 중에 실습갈 곳이 없어서 광주에서 목포까지 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라면서 "간호사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현장에서 하는 공부라고 생각하는데 앞으로의 미래가 막막하다"고 말했다.
◆기회 잃은 해외 경험…취업 전선도 먹구름=코로나19에 하늘길이 막힌 것도 취준생에겐 큰 타격이다. 유학을 통해 외국어 등 스펙을 갖추고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수도권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우고 있는 이승은씨(25)는 대학 입학 때 가졌던 미국 유학이라는 꿈을 포기했다. 전세계에 바이러스가 퍼져 교환 학생 혹은 어학 연수로 미국 유학을 가는 길이 막혔다. 해외 유학이 어려워지자 청년들에겐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다가온다. 이씨는 "이제 4학년이라 취업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코로나 이전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전했다. 동국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안모씨(26)도 해외경험과 영어를 배우기위해 지난해 초 동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가려고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무기한 연기됐다. 안씨는 "제대 이후 해외경험을 해보고 싶었으나 코로나19 탓에 하지 못했다"며 "그럼에도 결국 취업할때 불이익 받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신입 채용 규모를 줄이고 수시, 경력 채용을 선호하는 기조로 변모하고 있다. 취업난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학번’에게는 엎친데 덮친격이다. 국내 대기업의 대규모 신입사원 채용이 3년 새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는 집계도 나왔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대기업 74개사, 중견기업 91개사, 중소기업 152개사 등 국내 상장기업 317개사를 대상으로 올해 기업 신입 채용 결과를 조사한 결과다. 신입사원을 채용한 기업은 239개사(75.4%)인 반면 1년간 채용을 하지 않은 기업은 78개사였다. 기업규모별로 대기업은 91.9%, 중견기업은 87.9%, 중소기업은 59.9%였다.
◆무너진 학생자치…주인없는 대학=서울대, 연세대, 서강대 등 서울지역 주요 대학 중 절반이 넘는 곳에서 2022년 총학생회(총학)를 구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대표기구가 공석 상태에 놓여 학생자치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학기 시작을 앞두고 서울시내 대학 20곳 중 12곳이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해 임시기구인 ‘비상대책위원회’ 등 대체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대·연세대 등 4곳은 ‘투표율 미달’로 총학 구성에 실패했고 서강대·이화여대·중앙대 등 8곳은 ‘후보자 미등록’ 등으로 총학을 구성하지 못했다. 서울대는 2년째 총학을 구성하지 못했다. 후보자 미등록으로 총학 선거가 무산된 동국대는 비대위원장 지원자도 없어 모집이 무산됐다. 학생회가 없는 대학에서는 현재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비상대책위원회 등의 형태로 학생자치기구가 운영되고 있다. 이들 대학에서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은 이유는 입후보 미등록, 투표율 미달 등으로 올해 선거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학생회 등 학생 자치 활동이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오래된 얘기지만 코로나19가 이를 가속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리나 학교 신문사·방송국 등의 학생 자치 활동도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로 대학 캠퍼스 곳곳이 닫혀 버린데다 비대면 수업이 지속돼 대학에 대한 소속감도 떨어지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이전부터 학생활동에 대한 관심 자체도 줄고 있는 영향도 한몫했다. 대학생 A씨는 "대학 동아리들이 나름의 전통과 명맥을 이어오는 것은 역시 관계의 힘이었는데 코로나19로 만나지를 못하니 이것이 무너졌다"며 "대학의 기능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