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채석기자
41년 만의 한파에도 20대 대통령 선거 열기는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원자력이 정책 이슈의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야당 대선 후보는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력의 이용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 여당 후보는 감(減)원전을 표방하며 원자력 이용에 소극적인 정책을 견지할 모양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원자력 이용에 대한 논쟁은 뜨겁다. 대선이 아니라 바로 코앞에 다가오는 탄소중립 때문이다.
탄소중립에 가장 앞장서는 지역은 유럽이다. 지난 7월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명시하는 기후법을 제정했다. 유럽연합의 탄소배출 기준연도는 1990년이다. 기후법을 만들면서 2030년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50% 축소에서 55%로 올리기까지 했다. 스웨덴은 2045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국내법으로 명시하고 프랑스, 독일 등도 국내법으로 탄소중립을 명시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이행하기 위한 제도적, 재정적 뒷받침을 그린 딜이라고 부른다. 그린 딜의 지원을 받으려면 적격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적격 여부를 가늠하는 체계가 택소노미다. 택소노미에 포함돼야 그린 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유럽은 원자력을 택소노미에 포함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27개 유럽연합 국가 중 포함에 찬성하는 나라는 프랑스 등 12개국이다. 반대하는 국가는 탈원전 선두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등 5개국이다. 원자력의 택소노미 포함 여부는 당초 지난 6월 말에 결정하기로 했다가 기한을 연말로 미루더니, 연말에 초안을 발표하되 최종결정은 내년 초로 또 미뤄졌다.
원자력은 지난해 1월 EU가 처음으로 그린 딜 계획을 발표할 때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수의 동유럽 국가들이 탄소중립을 위해 원전 도입을 추진하고 서유럽 국가들도 재생에너지로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한계를 느끼면서 원자력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유럽공동연구소는 올 4월 원자력의 위험성이 다른 에너지원보다 크지 않다는 분석 결과를 제시했고, 유엔 유럽경제자문기구는 원자력이 유엔의 지속가능성 목표을 만족한다는 결론을 냈다. 유엔도 원자력이 경제적이고 깨끗한 에너지로서 인류를 위해 공헌할 수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이런 배경에 힘입어 이번 택소노미 개정에 원자력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6월 그린 택소노미 초안을 발표하면서 원자력은 빼고 가스를 넣었다. 가스가 석탄보다 온실가스를 덜 낸다는 이유였다. 유럽은 이번 택소노미 개정에 원자력과 함께 가스를 넣을 전망이다. 다만 탄소포집을 해서 현재 가스발전보다 40% 이상 온실가스 배출을 적게 내야 한다. 탈원전으로 원자력에 기댈 수 없는 독일이 가스를 포함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가스보다 원자력이 탄소중립에 더 부합하는 에너지원인 만큼 유럽이 가스를 포함할 경우 원자력도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만 고집스럽게 원자력을 배제해선 안 되는 이유다.
택소노미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유럽보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더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유럽이 원자력을 택소노미에 포함한다면 동유럽을 시작으로 원전 시장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탄소중립과 원전시장을 본다면 원자력은 선거의 논쟁거리가 될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실리를 챙길 수 있는 탄소중립 택소노미를 세울 것을 대선 주자들에게 당부한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