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희기자
지난달 2일 유튜브에 올라온 '승무원 룩북 / 항공사 유니폼 + 압박스타킹 코디'라는 제목의 영상. 승무원을 성상품화 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사진=유튜브 캡처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한 여성 유튜버가 속옷 차림으로 등장해 승무원 유니폼을 입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른바 '룩북(Look Book)' 영상을 공개해 성 상품화 논란 일고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아동·청소년을 비롯해 누구나 제재 없이 시청할 수 있다. 승무원을 성 상품화했다는 비판, 특정 직업에 관해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튜브에서 룩북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 A씨는 지난달 2일 '승무원 룩북 / 항공사 유니폼 + 압박스타킹 코디'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A씨는 영상에서 속옷을 입고 등장해 "오늘은 승무원 룩북을 준비해 봤다"며 실크 소재 하늘색 블라우스와 흰색 치마, 실제 승무원들이 신는다는 압박 스타킹을 착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룩북이란 원래 브랜드의 의상 관련 정보를 알리기 위해 제작한 책자를 말하는데, 최근 유튜브에서는 유튜버가 직접 나와 의상을 입어보며 소개하는 콘텐츠를 룩북이라고 칭한다. 본래 취지는 코디를 제안하거나 의상을 소개하는 것이었으나, 일부 유튜버들은 조회수를 올릴 목적으로 노출이 과하고 선정적인 영상을 올리고 있다.
영상에서 A씨가 입은 의상은 국내 항공사 대한항공 승무원들이 입는 유니폼과 색깔·디자인이 거의 흡사했다. A씨는 "영상에 나오는 모든 제품은 제가 직접 구매한 의상들"이라며 "이 의상은 특정 항공사의 정식 유니폼이 아니고 유사할 뿐, 디자인과 원단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A씨는 속옷 차림에서 준비한 의상을 입고 스타킹을 신는 모습까지 보여준 뒤, 한쪽 다리를 의자에 올리거나 바닥에 인어공주 자세로 앉는 등 포즈를 취했다. A씨는 이후 입던 의상을 벗고 승무원 유니폼을 연상시키는 또 다른 복장으로 갈아입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청소년들./사진=연합뉴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승무원을 성 상품화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누리꾼들은 "승무원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줄 수 있는 행동이다", "누가 스타킹을 저렇게 신나", "옷을 입든 벗든 자기 마음인데 특정 직업에 피해 주는 행동은 잘못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자신을 현직 승무원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내 직업은 성적어필하는 일이 아닌데, 승무원도 아닌 사람이 유니폼 입고 성적어필하면서 룩북을 찍고 있는 게 말이 되냐"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영상을 아동·청소년들도 아무런 제재 없이 검색만 하면 시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는 콘텐츠 제작 가이드라인에 '음란물을 게시하면 콘텐츠가 삭제되거나 채널이 폐쇄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음란물은 성적 만족을 목적으로 성기, 가슴 등을 노출하거나 성적 행위를 묘사한 영상 등이 해당하는데, 룩북의 경우 신체를 다 노출한 것이 아니라 음란물로 분류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기준이 불분명하다.
현재 유튜브에는 A씨처럼 몸매를 드러내면서 옷을 갈아입거나, 중요 부위 만 보이지 않으면서 속옷을 갈아입는 룩북 영상이 넘쳐나고 있으며, 일부는 성인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자칫 아동·청소년에게 잘못된 성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A씨 영상은 특정 직업군을 성적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잘못된 풍토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나오고 있다. 다만 일부 누리꾼들은 "이 영상이 뭐가 문제라는 거지?", "예쁘기만 하다"라며 A씨를 옹호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도 공식 대응에 나섰다. 대한항공은 A씨에게 문제의 영상을 삭제하도록 요청했고, 향후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는 노출이 심한 룩북 영상을 법적으로 제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아동·청소년에게 무분별하게 공개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접근 권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은의 변호사(이은의 법률사무소)는 "승무원 룩북은 음란물로 분류되는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해도 위법하다고 판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 직접적으로 성기 등을 노출한 것이 아니라면 현재 기준으론 제재할 방법 없다"라며 "그러나 이런 콘텐츠를 보고 성적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미성년자들에게 무분별하게 공개되는 것이 유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비판이 존재하는 부분은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도덕과 양심의 문제로 바라봐야 할 부분"라며 "다만 일정 도를 넘는 영상에 대해서는 규제를 해야 하고 플랫폼도 아동·청소년이 유해 콘텐츠에 노출되지 않도록 평가, 인증 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