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오티베큠, 반도체 EUV 공정에 필요한 진공펌프 국산화 도전

정부가 소재ㆍ부품ㆍ장비(소ㆍ부ㆍ장) 부문에서 강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 올렸다. 지난해 일본 정부가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소재에 대한 수출을 규제하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주요 수출 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일본을 직접 방문해 문제 해결에 나섰다.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밸류체인(GVCㆍ가치사슬)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핵심 소재와 부품, 장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지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창립 51주년 기념식을 치른 2일 국내 소ㆍ부ㆍ장 기업 4곳에 740억원을 투자했다. 해외 의존도가 높았던 소ㆍ부ㆍ장 부문의 강소기업 지분을 직접 확보해 장기 협력관계를 이어간다는 '선언적' 투자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시아경제는 삼성전자가 지분을 투자한 기업 가운데 미코와 엘오티베큠 기술력과 재무구조 등을 점검하고 성장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아시아경제 박형수 기자] 건식진공펌프 개발업체 엘오티베큠은 지난 2일 이사회를 열고 190억원 규모의 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신주는 거래처인 삼성전자가 전량 인수한다. 신주 발행가격은 1만4980원으로 기준가 대비 10% 할인율을 적용했다. 신주 상장 예정일은 오는 30일이다. 엘오티베큠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과 확실한 동맹관계를 구축하고 제품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R&D)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식진공펌프 기술력 인정= 2002년 설립한 엘오티베큠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태양광, 2차전지 생산공정에 필요한 건식진공펌프를 개발하는 업체다. 반도체 제조공정은 대부분 진공상태에서 진행한다. 반도체장비 자체가 하나의 진공시스템이라 볼 수 있으며 공정 특성에 맞는 진공도를 유지해야 반도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반도체 제조공정은 일반 제조업보다 복잡하고 난이도가 높다. 펌프 수요가 많아서 '반도체 제조용 진공펌프 시장'을 별도로 형성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진공펌프 가운데 건식진공펌프와 터보분자펌프가 주로 사용한다. 고진공펌프는 대기압에서는 작동하지 않으므로 중진공의 환경을 제공하는 건식진공펌프가 기초펌프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제조공정 중 건식펌프 수요 비중은 박막(CVD)48%, 식각 33%, 확산 14%, 기타 5% 순이다. 엘오티베큠은 주로 D램의 CVD 제조공정을 중심으로 펌프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고객사 수요의 70%를 엘오티베큠이 공급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공정과 유사한 디스플레이, 태양광 산업 등에서도 진공펌프 수요가 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고난이도 공정에 투입되는 진공펌프 기술은 스웨덴, 독일, 일본이 주로 보유하고 있다. 엘오티베큠은 세계 최초의 진공펌프업체인 독일 라이볼트베큠사의 미국 공장을 2002년 인수했다. 이전받은 기술을 바탕으로 2003년 진공펌프 국산화에 성공했고 삼성전자 협력업체로 선정됐다. 2007년부터 삼성전자를 통해 '식스 시그마(six sigma) 품질개선 시스템'을 도입했다. 독일 올리콘 라이볼트베큠사로 태양광셀 제조공정용 건식진공펌프를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납품하면서 독일의 체계화된 품질 관리 노하우를 축적했다.

진공펌프 관련 다수의 특허를 확보하고 세계적인 펌프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미세하고 공정의 난이도가 어려운 공정에서 기술력을 검증받았다.

지난해 경기도 오산에 통합 신사옥을 건설하고 생산능력을 2배로 늘렸다. 주요 반도체 고객사와 전체 공정의 국산화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민희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체 공정에서 엘오티베큠 점유율을 현 수준에서 내년 말까지 2배로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반도체 장비 국산화 요구가 커지면서 수혜를 볼 것"이라고 기대했다.

◆삼성전자, 엘오티베큠과 국산화 협력= 삼성전자가 엘오티베큠에 지분 투자를 결정한 배경에는 7나노 이하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공정 투자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EUV 공정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기존 공정보다 복잡한 EUV 노광공정은 다수의 고성능 진공펌프를 필요로 한다. EUV 장비를 생산하는 ASML에 영국의 에드워드사가 진공펌프를 주로 공급하고 있다.

핵심 소부장 국산화 필요성이 커지면서 엘오티베큠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EUV 라인을 중심으로 D램, V 낸드 등의 생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업체가 관련 진공펌프 기술력을 확보하면 안정적인 밸류체인을 만드는 데 유리하다.

엘오티베큠은 지난 5월 반도체공정용 진공펌프 및 디스플레이 반도체 공정장비용 초고진공 터보분자펌프 개발 2건이 국책과제로 선정됐다. 251억원 규모의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분을 투자하고 기술 개발하는 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면 국산화 일정을 앞당길 수 있다.

나성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진공펌프는 국산화 성과를 내기에 가장 수월한 품목 가운데 하나"라며 "경쟁사인 영국의 에드워드사가 50% 이상 점유한 삼성전자 내 식각 공정에서 점유율을 높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엘오티베큠은 올 상반기 누적 매출액 966억원, 영업이익 12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은 42.6% 늘었고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했다. 메모리 수요 둔화 영향으로 올 하반기 실적은 부진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국산화 시도가 늘면서 사업 기회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재무구조도 탄탄하다. 지난해 말 기준 부채 비율은 66%다.

박형수 기자 Parkhs@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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