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담기자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 대학생 김모(24)씨는 한 달 통화량이 채 1시간도 되지 않는다. 그는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긴장된다"면서 "통화보다 메신저로 소통하는 게 더 편하다"고 말했다. 이어 "친한 친구와도 전화보다 메시지로 연락하는 게 훨씬 편하다"며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웬만하면 문자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콜 포비아'를 호소하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 콜 포비아란 전화를 뜻하는 'call'과 공포증을 의미하는 'phobia'의 합성어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에 필요 이상으로 긴장을 하거나 불편함을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 단어다.
특히 휴대전화와 인터넷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의 경우, 통화 자체를 어색해하는 것은 물론 회피하는 경우까지 나오고 있다. 이들은 전화 통화보다는 문자나 모바일 메신저, 이메일 등 비대면 방식의 소통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는 콜 포비아를 극복하기 위해 휴대전화나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를 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콜 포비아 상황은 지속해서 늘고 있다. 잡코리아가 지난달 성인남녀 5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3.1%가 '콜 포비아를 호소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동일조사 결과(46.5%) 대비 6.6%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즉 성인 2명 중 1명은 통화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콜 포비아를 겪는 가장 큰 이유(복수 응답)로 ▲ 전화보다 메신저 앱/문자 등 비대면 의사소통에 익숙해져서(58.2%) ▲나도 모르게 통화로 말실수를 할까 봐(35.3%) ▲말을 잘 못 해서(30.5%) ▲통화 업무, 상사와의 통화로 인한 두려움 등 트라우마가 있어서(22.5%) 등을 꼽았다.
대학생 김모(24)씨도 전화 통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그는 "전화가 오면 일부러 받지 않고 30분 뒤에 메신저나 문자로 용건을 물어본다"면서 "통화를 하다가 말실수를 할 것 같아서 걱정된다. 또 통화한 이후에도 내가 잘못 말한 것은 없는지 계속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메신저만 주고받다가 갑자기 전화가 오니까 당황하게 되는 것 같다"면서 "또 통화는 즉각 대답해야 하니까 부담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이렇다 보니 아예 통화하기 전, 상대방에게 할 말을 미리 적어놓고 예행연습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이모(25)씨는 "업무 특성상 거래처와 통화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럴 경우, 꼭 어떤 내용을 말할지 미리 적어 놓는다. 그래야 당황하지 않고 할 말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일부 젊은층은 콜 포비아를 넘어 타인과의 대화를 꺼리는 일명 '토크 포비아(talk phobia·대화 공포증)'까지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점원과 마주치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은 물론 직원과의 대화를 스트레스로 여기기도 한다.
대학생 이모(23)씨는 "화장품 가게에서 점원이 말을 걸면 필요한 물건만 사서 빨리 나온다"면서 "좀 더 편하게 보고 싶은데 타인이 말을 걸면 너무 불편해서 회피하게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는 가까운 지인 등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전화를 시작으로 콜 포비아를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YTN '생각연구소'에서 "콜 포비아가 지속하면 불안 증상이 높아질 수 있다"면서 "전화 통화하는 것 외에도 다른 일상생활이나 과제를 수행하는 것에도 대인기피증이 확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 등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상대와 얼굴을 보며 이야기 나누거나 꾸준히 전화하다 보면 어색함이 사라지고 면역력을 키울 수 있다"며 "디지털 디톡스 또한 도움 된다. 하루 한 시간 만이라도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끄고 대신 가까운 사람을 만나거나 전화하는 것이 도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