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의 역사' 아르헨티나…9번째 채무불이행 초읽기

독립후 9년만인 1827년 첫번째 채무불이행…지금까지 8차례
글로벌 10대 경제대국에서 급속히 추락
포퓰리즘-신자주의 개혁 번갈아가며 실패
기간산업 국유화·복지강화 '페론주의' 포퓰리즘
신자유주의 개혁도 성과 못 내
코로나19 상황에서 채무조정 이뤄질지 주목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아르헨티나의 9번째 채무불이행(디폴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오는 22일까지 연장된 650억달러(80조1400억원) 규모의 채무재조정 협상에서도 채권단과 합의점을 찾지 않으면 아르헨티나라는 국가는 명목상 파산 상태에 놓이게 된다. 협상시한까지 5억달러의 이자를 지급해야 할 정도로 나라 살림은 거덜났다.

아르헨티나의 역사는 디폴트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16년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디폴트 선언만 8차례를 기록했다. 첫 번째 채무불이행 선언은 1827년이었다. 독립 후 막대한 나라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 런던 금융가에서 국채를 발행했는데 1825년 영국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자 디폴트를 선언한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빌린 돈을 갚고 다시 국제 금융시장에 참여할 수 있던 것은 이로부터 30년 뒤였다. 아르헨티나의 디폴트는 그 이후 1890년, 1951년, 1956년, 1982년, 1989년, 2001년 그리고 2014년까지 이어졌다.

아르헨티나는 19세기만 해도 농업 부국 가운데 한 곳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선진국이었다. 팜파스 대평원을 활용해 목축과 농업으로 부를 일군 덕분이었다.

하지만 1946년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그때까지 쌓아올린 국부는 순식간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부의 재분배를 표방하며 기간 산업을 국유화하고, 복지 등을 강화한 페론주의를 내세우면서 경제 사정은 갈수록 꼬였다. 재정건전성은 뒷전이었다.

아르헨티나 전문가인 벤자민 게단 윌슨센터 국장은 "아르헨티나가 디폴트를 선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정 준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수입을 위해 달러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달러를 빌려왔는데, 폐쇄경제를 운영하다 보니 빌린 돈을 갚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이 매번 반복돼왔다"고 지적했다.

198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의 디폴트는 잦아졌다. 지금까지 8차례 디폴트 가운데 4차례가 40년 새 집중됐다. 특히 페론주의와 그 정반대의 신자유주의 정권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경제 상황이 더 꼬였다는 평가다. 최근 9번째 디폴트 상황에 내몰린 것은 시장주의 개혁을 표방한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의 개혁 실패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마크리 전 대통령은 방만한 아르헨티나 재정 상황을 개혁하기 위해 각종 보조금 등을 삭감하는 정책을 폈다. 또 해외 자금 유치를 위해 7차와 8차 디폴트 당시 갚지 않은 채무 변제에 나서는 등 친시장적인 정책을 펼쳤다. 덕분에 외국인 투자가 늘면서 경제가 살아나는 효과가 나타났지만 페소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페소 환율이 약세를 보이면서 아르헨티나가 갚아야 하는 외채 부담이 더욱 커진 것이다.

시장에서는 아르헨티나가 고질적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졌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영향이 있지만 자주 디폴트 상황에 놓이다 보니 부채 탕감을 당연히 여긴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현재 채권단을 상대로 3년간의 상환유예와 함께 62% 이자삭감, 원금의 5.4% 탕감을 제안한 상태다. 아르헨티나는 채권단을 상대로 수정안은 없다며 오히려 협상안을 수용할지 말지를 결정하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가 의도적으로 상환 능력을 낮추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채권상환 능력을 설명하면서 2030년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5580억달러(687조3000억원)로 제시한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추산치보다 1200억달러 적다. 각국이 국제기구보다 경제전망치를 부풀리는 통상적인 상황과 정반대인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채무 부담을 줄이려고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잡으려 한다는 얘기다.

한 채권단 대리인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말하기 좋아하지만 국가 간 비교를 해보면 그렇지 않다"면서 "중기적으로 절제된 재정을 운영하겠다는 구조적 노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아르헨티나가 은행 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위기 때마다 페소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경험한 아르헨티나인들은 페소화를 자국 은행에 예금하기보다 해외 계좌에 달러로 바꿔 저금하는 성향이 강하다. 최소 3000억달러의 예금이 해외 계좌에 저축돼 있지만 이 자금은 좀처럼 아르헨티나로 들어오지 않고 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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