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올해는 꼭 붙어서 효도할게요' 새해 잊은 노량진 학원가

"올해는 꼭 붙을 겁니다" 공시생들, 학원 몰려
"공무원 시험 공정…정년 보장 인기"
노량진서 합격한 공시생, 선생님 새해 인사차 들르기도

2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위치한 한 공무원 시험 학원. 수험생들이 각자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김슬기 인턴 기자 sabiduriakim@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슬기 인턴기자] "엄마한테 항상 미안하죠. 좋은 소식 들려드릴 거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심정이에요."

2020년 1월 새해 시작으로 모두가 들떠 있는 지금,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들이 모여있는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학원가는 오히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러면서도 각오를 다지는 사뭇 긴장한 표정의 수험생들도 적지 않았다.

2일 오전 노량진에서 만난 27살 김모 씨는 경찰직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로 1년째 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김 씨는 "하루 18시간 공부한다. 고시원에서 자취하고 있다. 시험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해를 맞이해 부모님께 한 말씀 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김 씨는 "전북 익산에서 올라왔는데 (아무래도) 부모님 생각 많이 난다. 항상 미안하고 올해는 꼭 좋은 소식 들려드렸으면 좋겠다"고 멋쩍게 웃었다.

그는 시험 공부를 하며 가장 힘든 상황으로 "몇 점 차이로 아쉽게 불합격했을 때가 가장 힘들다. 소위 '멘탈'(mental·정신세계)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2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골목. 수험생들이 새해도 잊은 채 바쁘게 지나가고 있다. 사진=김슬기 인턴 기자 sabiduriakim@asiae.co.kr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난 속 공무원 시험은 젊은 층에서 많이 응시하고 있다. 합격 기준이 높지만, 적어도 시험은 공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이 젊은 시절을 노량진에서 보내는 이유다.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지난해 10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1,02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4.7%가 '현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4명 중 1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있는 셈이다.

또 '앞으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의향이 있다'는 답변은 59.7%에 달했다. 공무원 시험을 볼 뜻이 없다는 응답자는 15.7%에 그쳤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유로는 '정년 보장'을 꼽은 응답자가 69.7%(복수 응답)에 달했다. 이어 △노후 연금(37.9%) △ 복지제도 및 근무환경(21.1%) △다른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서(12.6%) 등이 뒤를 이었다. 공무원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서 준비한다는 응답자는 12.2%에 불과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경찰공무원 학원에서 수험생들이 자습을 하고 있다.사진=아시아경제DB

시험 합격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 구멍들어가기 보다 어렵다'는 수준이다.

지난 2018년 국가직 9급 공채 응시자(15만 5298명) 중 절반이 넘는 약 8만 명이 과락했다. 합격선에 못 미치는 70점 미만의 응시자는 무려 85%(13만 1153명)에 달했다.

특히 행정직군은 응시자들 사이에서 합격 여부를 예측할 수 없는 직군으로 알려졌다. 이 시험은 선택과목 조정점수제를 적용한다. 이에 따라 △필수과목 원점수 △선택과목 조정점수를 합산한 5과목을 총점 기준으로 합격자를 결정한다.

이 때문에 명단을 공개하기까지는 당락 여부를 점치기가 쉽지 않다. 응시직군에 따라 공시생들의 시험 준비 희로애락이 달라지고, 쉽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공시생들은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시험 준비를 하는 셈이다.

법원직 준비를 올해로 2년째 하고 있다고 밝힌 28살 여성 박모 씨는 "가족들에게 힘든 표정을 보이기 싫다"면서 "공부 관련 얘기는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집에서 노량진으로 통학을 하고 있다면서 "집에서 학원까지 왕복 2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통학할 때 아침에 출근 시간이랑 맞물려 힘들다. 체력적으로도 힘이 든다"고 토로했다. 이어 "2월에 시험이 있는데, 잘 모르겠다"면서 "그래도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맛볼 수 있는 일명 '노량진 컵밥'사진=아시아경제DB

그런가 하면 아예 대학을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도 있었다. 검찰직 준비를 6개월째 하고 있다고 밝힌 24살 여성 김모 씨는 "학교 휴학을 했다. 노량진에서 자취하면서 (시험) 준비하고 있는데, 진짜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집이 경북 구미여서 '새해 다짐' 차 최근 집에 내려갔다 왔는데 심적으로 압박감이 심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후회도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앞만 보면서 살아야하는 삶 때문에 지치기도 하고 걱정도 많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집서 부모님이랑 같이 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힘내자 다짐하는 계기도 됐다"고 말했다.

이어 "힘들 때도 있지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때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웃어 보였다.

한편 이날 노량진에서는 공시생 생활을 끝낸 합격자도 만날 수 있었다. 교정직에 합격했다는 27살 박 모 씨는 "(시험에) 합격한 지 좀 됐는데 근처 온 김에 학원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러 왔다"면서 "새해인데도 여긴 변함없이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 예전 생각난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 공시생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서 "갈수록 취업 문턱이 높아져서 다들 공무원 준비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사기업은 원하는 게 많고 준비해야 하는 것도 많지만 공무원시험은 공부하고 시험을 본다는 점에서 비교적 공정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모든 분들에게도 좋은 결과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팀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이슈팀 김슬기 인턴기자 sabiduriaki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