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기자
MATRIX-RE01 mixed media on canvas 78X120cm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자연의 섭리에는 복잡하면서도 정돈된 질서가 숨어 있다. 예술과 만나면 무한한 소재가 된다. 있는 그대로의 모방보다 인간사를 포함한 섭리로 재해석된다. 혼돈 속의 질서 또는 질서 속의 혼돈이다. 문유선 작가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색면 추상으로 표현한다. 끊임없이 생동하는 시대 흐름을 선과 선, 공간과 공간으로 엮어 유기적 형상으로 펼친다. 이어 삶의 본질,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 생명의 숭고함과 같은 사색을 담는다.
종로구 삼청로에 위치한 갤러리도스는 내달 2일부터 15일까지 문 작가의 실험적 시도를 조명한다. 개인전 ‘혼돈으로부터의 유기적 질서’다. 복잡하게 얽힌 선들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한데 나열한다. 비움과 채움, 혼돈과 질서와 같은 상반된 요소들의 집합체다.
HAZE-B01 mixed media on canvas 100x35cm
김선재 큐레이터는 “흘려진 색들이 춤을 추듯 유려하고 자유로운 형상으로 나타나다가 테이핑 과정을 거쳐 질서가 부여되고 통제된다”며 “일정한 간격으로 교차되는 색 면에 의지와 우연의 요소가 결합돼 형상들이 균일함 속에서 무한한 변화를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가는 선들의 모임은 또 다른 커다란 형태를 만들고, 선들이 만들어낸 형태는 새로운 공간을 자아낸다”면서 “상호적 관계로 작용해 하나의 확장된 구조를 형성한다”고 했다.
반복적인 선은 중첩되고 연속되는 형상으로 인해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경과 후경, 형상과 배경의 명확한 구별도 없다. 그래서 순수한 평면성을 가진 단순한 무늬처럼 보인다. 김 큐레이터는 “질서와 무질서가 뒤섞인 화면에서 치밀함과 성김, 막힘과 뚫림, 투명과 불투명, 빽빽함과 느슨함 등 대립적 특성들이 즉흥적이면서도 섬세한 변이 과정을 거쳐 혼합된다”고 했다. “선들이 서로 섞이거나 충돌하는 우연과 필연의 과정을 통해 점차 안정적인 구도를 형성한다”고 했다.
FABRIC-SK01 mixed media on canvas 115x70cm
수직과 수평의 면이 반복적으로 짜여 긴밀한 구조를 이루는 모습은 각기 다른 개개인이 공존하며 이루는 사회 모습과 흡사하다. 김 큐레이터는 “혼돈의 가는 선들과 함께 질서정연한 기하학적 형태의 면을 동시에 구현한다”며 “문유선 작가는 이런 조화가 인류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의 근원이라 믿는다”고 했다. 결국 세상과 소통이다. 유기적 공간에서 끊임없이 순환하는 무질서와 질서의 모순된 조화가 두 세계의 상호작용을 가리킨다. 김 큐레이터는 “바쁜 현실을 살아가며 잊기 쉬운 우리의 본질을 일깨우며 자연이 가진 섭리를 새로운 조형미로 형상화한다”며 “삶의 존재에 대한 사유를 생각하게 한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