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심야 식당/박소란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국수를 잘하는 집이 한 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는데

그곳 작다란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 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좀처럼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새금하니 혀끝이 아린 순간

순간의 맛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란 얼마나 촌스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요즘은 텔레비전의 어느 채널을 틀어도 온통 먹방 프로그램들뿐이다. 그러니 시인이 적은 그대로 "허기란" 이제 "얼마나 촌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의 삶이 지난 시절에 비해 진정 풍족해지고 세련되어졌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저 먹는 일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은 우리가 한갓 살아 있는 시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닐까. "혼자 밥 먹는 사람"의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미식을 탐하는 지금보다 '배고프니까 국수 한 그릇씩 나눠 먹자'고 말하던 허기진 시절이 실은 더 풍족했고 정다웠지 않은가.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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