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낙규의 Defence Club video]한미 SCM은 김신조사건이 시발점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한미가 SCM을 유지해온 50년동안 많은 역할도 주도했다. 우선, 지금의 한미 연합방위체제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7년 제10차 SCM에서 한미는 연합군사령부(이하 연합사) 창설을 결정했고 실제 이듬해 연합사가 창설됐다.1978년에는 연합사 창설과 함께 한미 합참의장 간 협의기구인 한미 군사위원회(MCM)도 설치됐다. 이로써 양국 통수권자의 지침을 SCM→ MCM→ 연합사 등을 통해 구현하는 연합방위체제가 구축됐다.

SCM은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능력 구축에도 기여해왔다. 1970년대 미국 정부의군수공장 건립 지원과 대외군사판매(FMS) 차관 제공 등은 한국군이 자주국방 역량을강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우리 군은 미국과 상호군수지원협정을 체결하고 방위산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군 장비를 현대화하고 방위산업을 발전시켰다.

SCM은 작전통제권 환수(전환)에서도 주요 정책 결정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1994년 평시작전권의 환수가 이뤄졌다. 이후 2006년 제38차 SCM에서 양국 국방장관은"2009년 10월 15일~2012년 3월 15일에 전시작전권도 한국군으로 전환한다"고 합의했다. 이후 전작권 환수시기는 2012년 4월 7일로 정해졌으나 2010년에 한반도 안보 상황을 고려해 전작권 환수 시기가 2015년 말로 연기됐고, 2014년 제46차 SCM에서 한미가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원칙에 합의하면서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한편, 양국 국방부는 지난 26일 '제50차 SCM 개최 기념 한미 공동발표문'을 통해 "SCM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한반도의 안보를 보장해온 대체 불가능한 동맹협의체로 자리매김했다"고 밝혔다. 양국 의회에서도 SCM에 대한 지지 결의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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