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시흥시 배곧신도시 일대 전경(사진=시흥시)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시흥(始興)'이란 지명을 들으면 보통 경기도 시흥시를 떠올리지만 이 지명은 서울 안에도 존재한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 역시 한자까지 같은 시흥이란 지명을 사용한다. 심지어 지명의 어원이나 역사를 검색해도 둘이 동일하게 고구려 때 지명인 '잉벌노(仍伐奴)현' 에서 비롯됐다고 나온다.동떨어진 두 지역의 지명과 역사가 어떻게 같은 것일까? 현재는 이 두 지역 사이에 광명시가 놓여있어 분리돼있다보니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서울과 경기에 동떨어진 두 시흥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지명이 처음 생겨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시흥은 본래 '일어나 뻗어나간다'는 의미의 고어인 '잉벌노'라는 고구려 지명을 고려시대 한자로 기록하면서 별칭처럼 불리던 이름이었다. 이때 시흥은 오늘날 시흥시가 아니라 서울의 시흥동 일대를 의미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시흥은 오늘날의 금천구 일대는 물론 영등포구 일대까지 다 포함해서 불리던 이름이었다. 1795년인 조선 정조 때 대략 시흥이라 불리던 지역들을 모아 '시흥현'을 세우면서 오늘날 시흥동 일대에 관아가 들어섰다. 이는 시흥이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로 가는 길목에 있어 시흥 관아가 행궁으로 쓰였기 때문이었다.오늘날 시흥시 일대가 시흥이란 지명을 얻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였다. 일제는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한성부를 경성부로 격하시키고 옛 한성부 외곽지역들을 독립시켜 서울을 축소시키는 정책을 취했다. 이에 따라 기존 조선시대 시흥현에 인천, 안산 일대 소속돼 있던 외곽지역들까지 다 합쳐서 엄청난 크기의 시흥군을 신설해 만들었다. 당시엔 서울 금천구, 영등포구, 관악구, 동작구, 구로구를 비롯해 광명시와 안산, 과천까지 합쳐 시흥군으로 통폐합되면서 시흥이란 지명이 서울 밖까지 확장됐다.이후 해방이 되면서 거대했던 시흥군은 축소를 거듭해 오늘날 시흥동과 시흥시 일대를 연결하던 지역들을 다 내놓고 둘로 쪼개졌다. 시흥시는 인천, 부천, 광명, 안양, 안산시 등 5개 도시와 경계를 짓게 된 경기도의 독립된 도시가 됐고 원래 시흥현의 역사를 간직한 금천구 시흥동은 분리돼 서울 일부로 남게 됐다. 오늘날 시흥시의 구조 또한 이런 복잡한 행정구역 변천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경기도 일대의 대표적인 도농복합도시로 크게 북부의 신천동과 은행동, 서남부 해안지대 정왕동과 두 지역 사이 행정중심지로 개발된 연성동이 세 축을 형성하고 도심지 사이마다 소규모 농촌 지역들이 존재한다.현재 시흥시는 올해 상반기 개통 예정인 소사-원시 복선전철 개통 호재에 부동산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이 전철은 부천 소사역과 시흥시청역, 안산 원시역을 연결해 일대 교통난 해소와 함께 역세권으로 개발이 기대되고 있다. 이어 2023년 신안산선, 그 이듬해인 2024년에는 월곶-판교선이 개통될 예정이라 개발 기대감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