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인디언 문화에서 찾은 위안과 안식

테일러 쉐리던 감독 '윈드 리버'

영화 '윈드 리버' 스틸 컷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한 여인이 소복소복하게 쌓인 눈밭 위를 맨발로 달린다. 방향이 겨우 분간되는 짙은 어둠 속에서 인기척을 찾는다. 숨을 들이마시기 힘들 만큼 차가운 밤공기. 그녀는 폐가 굳어가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걸음을 쉬지 않는다. 피가 고이고 기침이 터진다. 이내 피가 기도를 막아 호흡이 멎는다. 희미해지는 의식으로 여인은 시를 읊는다. "나의 세상에는 아름다운 초원이 있다. 나뭇가지가 춤추듯 바람에 나부끼고, 햇살이 부서져 호수에 물결이 이는. (중략) 사랑의 눈길로 날 바라보던 그대여, 진흙탕 같은 현실 속에 얼어붙어가는 날 찾아준다면 그대와 함께 했던 이곳으로 돌아와 완벽한 위안과 안식을 찾으리라."아메리카 선주민은 시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단어와 구절뿐 아니라 말을 할 때의 상황과 언어 속에 함축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소중한 지혜의 원천이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47)의 영화 '윈드 리버'는 그들의 감흥과 사상이 담긴 운율적인 언어로 막을 연다. 나탈리 핸슨(켈시 초우)은 백인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갈비뼈가 부러지고 질 벽이 손상된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도망치면서도 자신 때문에 아파할 이들을 떠올린다. 애틋한 마음은 그녀의 아버지 마틴 핸슨(길 버밍햄)은 물론 비슷하게 딸을 잃은 코리 램버트(제레미 레너)에게 위안이 된다. 백인인 램버트는 인디언 여인과 결혼해 핸슨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슬픔을 받아들여요. 견뎌요. 그것만이 나탈리와 함께 하는 방법이에요."

영화 '윈드 리버' 스틸 컷

이 영화는 지옥 같은 현실을 비판하는 드라마다. 세계평화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미국은 아메리카 선주민을 살육하고 땅을 강탈했다. 선주민들은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됐다. 보호구역은 미국 전역에 310곳이 있다. 토지 약탈은 1887년 보호구역 부족 토지를 사유지로 전환하는 일반할당법이 연방의회에서 제정되면서 지금도 계속된다. 이 영화의 배경인 윈드 리버 인디언 보호구역에도 정유공장이 들어섰으며, 굴착공사가 한창이다. 고삐 풀린 금융자본과 무한증식의 산업기술이 조종하는 세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쉐리던 감독이 각본으로 참여한 '로스트 인 더스트(2016년)' 속 텍사스 주도 그랬다. 토비(크리스 파인)와 태너 하워드(벤 포스터) 형제가 가족의 유일한 재산이자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의 소유권이 은행에 차압될 위기에 놓이자 은행 강도가 된다. 자연에 대한 약탈이 약자의 고통으로 돌아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쉐리던 감독은 지옥 같은 세계를 구원할 방법을 선주민의 문화에서 찾은 듯하다. 땅에 기초하는 영성(靈性)이다. 땅은 그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돈을 주고 무엇을 살 필요가 없었다. 필요할 때 사냥과 채집을 하며 어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그만이었다. 백인들은 선주민들을 '바퀴도 만들어 쓸 줄 모르는 사람'이라며 얕봤다. 하지만 바퀴는 편리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폐해를 가져왔다. 부드러운 땅에 상처를 내고, 단단한 바윗길은 역으로 바퀴에 상처를 줬다. 그뿐인가. 조립해서 만든 것은 부서지게 마련. 콘크리트와 파이프, 벽돌담으로 일리노이 강을 둘러싼 '아메리카의 베니스' 시카고는 그 담이 무너지면서 수십만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영화 '윈드 리버' 스틸 컷

윈드 리버는 인디언과 관련이 없는 미국 연방수사국 신참 제인 밴너(엘리자베스 올슨)를 통해 이 같은 폐해를 차분하게 들여다본다. 그녀는 고초를 겪으며 인디언의 삶을 이해한다. 램버트는 그런 그녀에게 "용감하다"고 말한다. "여기는 운이란 건 없는 곳이에요. 운은 도시에나 있죠. 여기선 살아남거나 당하거나 둘 중 하나에요.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곳이죠." 램버트와 다시 만나는 핸슨은 그 진리에 한층 다가가 있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아들을 보기 위해 경찰서에 갈 준비를 한다. 그는 순간에 충실해 과거와 미래의 고통에 집착하는 것을 피한다. 한 개인이 결코 참아낼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이 찾아오는 법은 없다. 지나간 과거의 고통과 찾아오지도 않은 미래의 고통으로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는 한 말이다. 그것이 그의 딸이 말한 완벽한 위안과 안식이 아니었을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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