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유죄 판단, 재판부의 '송곳질문'에 답 있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1심 선고공판이 열리는 법정으로 향하는 모습.(사진=문호남 기자)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가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5년을 선고한 배경에는 이 부회장 측 주장에 대해 품었던 재판부의 '합리적 의심'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과 변호인단은 재판 내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문제가 된 금전수수 행위나 '삼성합병' 작업에 적극 개입ㆍ지시하지 않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를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와 연결지어 인식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핵심 혐의인 뇌물죄의 전제가 되는 대가관계를 부정한 것이다. 이 고리가 끊어지면 이 부회장의 혐의 대부분은 무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었다. 재판부의 의심은 '삼성의 최고위 인사인 이 부회장의 개입이나 지시 없이 합병 및 각종 지원행위가 가능했겠느냐'는 데 닿아 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지난 3일 이 부회장에 대한 피고인신문에서 2015년 7월25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 뒤 이 부회장이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 '승마협회 지원 문제에 대해 신경을 안 쓰게 해달라'는 말을 한 점을 언급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건 어떻게 보면 지시라고 볼 수도 있는 것 같다"면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뭐냐"고 캐물었다. 이 부회장은 "대통령이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그걸 무시할 수는 없었던 거 같다"고 답했다. 이에 앞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ㆍ법정구속)은 ''이 부회장은 회장이 되길 원했다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회장에 오르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일이 이 부회장에게는 자연적인 것이라 이를 위해 뇌물을 쓸 필요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이런 주장에 대해서도 "대주주라는 (이 부회장) 개인적인 차원에서 상당히 큰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라고 지적하고 "(그럼에도) 회사 운영이라는 차원에서 존중했다는 게 어색하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또한 당시 최 전 부회장을 상대로 각종 현안에 대해 이 부회장에게 직간접으로 구체적인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는지를 집중 추궁했고, 특히 최 전 부회장 등이 이 부회장에게 '정유라'라는 언급을 한 번도 안 했다는 대목을 파고들었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한테서 승마지원이 부실하다는 질책까지 받았는데, 그렇다면 아무리 '유언비어' 성격이라도 정씨를 언급할 만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 전 부회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잘못 얽히기라도 하면 부회장이 또 책임을 져야 하고 (해서 보고를 안 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밖에도 '지속적인 경영권 행사와 지배구조의 관계', '미전실 업무에 대한 보고체계' 등 이 부회장 혐의와 연결되는 각종 쟁점사안에 대한 입장을 두루 신문하며 이 부회장 측 주장에 논리적ㆍ상식적 허점은 없는지를 따졌다. 재판부의 이런 시각은 선고를 통해 공개된 판결문에 그대로 담겼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해 "(합병에 따라) 이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발생한다"면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과의 밀접한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피고인신문 때 '이 부회장에게 상당히 큰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라고 지적한 것의 연장으로 읽힌다. '승마지원 요구'와 '정유라 지원 인지' 문제에 관해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은)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가 정권 실세의 딸인 정유라와 관련돼있음을 알았다"면서 "정유라 지원이 실질적으로 최순실에 대한 지원이고 이는 곧 대통령에 대한 금품 공여와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이 부회장이 지원 행위에 개입하고 지시했는지와 관련해 "(이 부회장은) 최 전 부회장, 장충기ㆍ박상진 전 사장에게 대통령의 요구를 전달하고 승마 지원에 관한 포괄적인 지시를 하며 지원 경위를 보고받고 이를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원 행위에 관여했음이 인정된다"고 봤다. 결과적으로 재판부는 재판 막판 이 부회장 등에게 던진 '송곳질문'을 통해 근본적인 의문에 관한 심증을 굳히는 쪽으로 심리를 진행한 셈이다.

법원[이미지출처=연합뉴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부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