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다정한/김경미

  오늘따라 기차가 너무 다정해서 바닷가 간이역이 되고
 바다로 난 의자가 너무 다정해서 저녁노을이 되고  다정한 불빛 아래 지금까지 본 라일락나무를 다 합친 라일락나무를 보았네 팔 벌려 안아 본 그 큰 다정함  한 뼘도 안 되는 양팔이 너무 다정해서 스웨터가 되듯이 섬과 밤이 하도 다정해서 복숭아 엉덩이가 되듯이  이런 화창함이라니!  ■나는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좋다. 똑똑한 사람도 좋고, 용기 있는 사람도 좋고, 솔직히 돈이 좀 많은 사람도 좋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다정한 사람이 좋다. 아니 다정하지 않으면 여하간 좋아지지가 않는다. 아마 누구든 그럴 것이다. 그런데 '다정하다'란 무슨 뜻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정이 많다' 혹은 '부드럽고 친절하다' 정도로 적혀 있다. 사전에 적힌 뜻풀이니 잘못 되었을 리는 없고 또 모자란 것도 아닌데 왠지 마뜩잖다. 왜일까? 아무래도 사전에 쓰인 바에는 정서가 생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뼘도 안 되던" 조각이 마침내 따스한 "스웨터"가 될 때까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깁고 짰을 그런 마음 말이다. 혹은 "바닷가 간이역"에서 "저녁노을"이 곱게 물든 "바다로 난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누군가를 기다렸을 그런 애틋함이 스며 있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시를 읽는 보람은 우리가 마음 없이 쓰곤 했던 말들을 "팔 벌려 안아" 보는 "큰 다정함"을 경험하는 일이라고.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