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인생의 계절을 받아들이면 불행할 이유가 없습니다

김수영 작가

예전에 이런 사연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많은 사랑받고 자라 외국에서 공부한 후 해외취업에도 성공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그녀는 서른 즈음에 집안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부모님이 따로 살게 되자 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결혼한 여동생은 잘 살고 있는데 자기도 마음같으면 남자친구가 있는 외국에 가고 싶지만 남자친구는 자기 앞가림이 급해 그녀를 책임지려 하지 않으니 더더욱 비참하다더군요. 그녀의 이메일에선 꺼질 듯한 한숨이 묻어나왔지만 제가 느낀 감정은 ‘부러움’이었습니다. 어릴적 사랑받고 자랐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큰 축복이잖아요. 만약 지금 겪고 있는 이 어려움이 어렸을 때 닥쳤다면, 그래서 부모님이 그때 자주 싸우거나 헤어졌더라면 정서적으로 큰 균열이 생겼을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성인이 되어 시련을 마주했으니 충분히 이겨낼 수 있지 않느냐고 답장을 보냈지만 그녀로부터는 더이상 답이 없었습니다. 평생 순탄하게 살다가 처음 시련을 겪은 사람 입장에선 저의 이런 답장에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살아오면서, 또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지켜보면서 저는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봄에, 어떤 사람은 겨울에 태어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지요. 그것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차적인 진행이 아니라 여름이었다가 겨울이고, 가을이었다가 봄이기도 합니다. 순서는 랜덤이지만, 누구나 살면서 인생의 바닥을 찍는 추운 계절이 오고, 정점을 찍는 따뜻하고 달콤한 계절도 옵니다.
춥고 따뜻함은 상대적인 것이라 열대 지방 사람이 한국을 겨울에 방문하면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강추위를 느끼겠지만, 북극 사람이 한국에 오면 상대적으로 따뜻하다고 느끼겠지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름을 살던 사람이 봄을 맞이하면 춥다고 온몸을 웅크리겠지만 겨울을 살던 사람이 봄을 맞이하면 너무 따뜻하다고 행복해하는 것이지요.일례로 한 60대 남자가 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자랐고,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15세부터 공사판 막노동을 했습니다. 30대 중반에 조그마한 건설회사 사장이 되었지만 부도를 냈고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자식들이 눈에 밟혀 결국 고향에 맨몸으로 돌아와 60세가 될 때까지 막노동 현장을 전전하며 살아왔습니다. 폭염과 강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40여년을 야외에서 일하다 보니 다치거나 몸져 눕는 날도 많았고, 사랑받아 본 적이 없어 사랑하는 방법도 몰랐기에 아내와는 눈만 마주치면 싸우고 자식들에게도 외면당했습니다. 평생 고생하며 살아왔지만 남은 것은 외로움과 분노뿐인 하층민의 삶이었지요.시간이 흘러 네 자식은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 이제 매달 생활비를 보내줍니다. 학창 시절 제일 사고를 많이 쳐서 포기했던 둘째 딸은 외국에서 번 돈으로 조그마한 집을 지어주었구요. 한때 디스크로 평생 일어나지 못할까 걱정했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하루에 2시간씩 산책을 하고 국민연금, 노인연금으로 나오는 40만원으로 기름값도 하고 커피도 사 마십니다. 여전히 눈만 마주치면 싸우긴 하지만 아내도 곁에 있고, TV를 켜면 눈으로 세계일주를 다닐 수도 있지요.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이 남자는 저희 아버지이고, 저는 그 말썽쟁이 둘째딸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지만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우리가족의 삶은 가혹할 정도로 추웠습니다. 그 오랜 혹한기와 맞서 싸우다 이제 겨우 봄을 맞이한 아버지는 “나는 천국에서 살고 있다”는 말을 달고 삽니다. 만약 평생 넓은 집, 외제차, 해외여행을 누려왔고, 많은 사람들을 밑에 두고 떵떵거리며 살아왔던 또 다른 60대 남자가 시골의 작은 집에 살며 자식들이 주는 생활비와 연금 40만원을 가지고 소일거리를 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아마 ‘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이토록 초라한 말년을 맞다니’ 하고 생각하며 괴로워하겠지요.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 아닌 그 상황에 대한 ‘해석’에 따라 행복하다거나 불행하다고 느끼지요. 삶은 늘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계절을 맞이하면 우리는 당황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계절이 너무 춥다고, 또는 너무 덥다고 슬퍼하거나 분노한다고 해서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냥 그 계절을 받아들이세요. 봄은 봄이라서, 여름은 여름이라서, 가을은 가을이라서, 겨울은 겨울이라서 좋지 않습니까? 김수영 작가<ⓒ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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