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지난 1월 18∼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청구와 기각 이후 이 부회장이 재소환된 2월 13일까지 25일여간 박영수 특검팀과 삼성의 행보는 정반대였다. 특검은 사실상 이 부회장을 정조준해 뇌물 혐의의혹을 제기하고 관련 수사를 진행함으로써 영장재청구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여러 의혹에 대해서는 이미 삼성과 복지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부인했지만 특검은 결국 이 부회장을 다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특검의 시계는 25일 이전으로 다시 돌아갔다. 반면에 삼성은 이 부회장의 경영공백 속에서도 역대급 실적개선과 주가상승을 통해 경제 전반에 적지 않은 활력을 불어넣었다. 전경련 탈퇴와 미래전략실 해체라는 약속도 지키면서 경영정상화의 시계를 돌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특검의 이 부회장 재소환으로 정치적 경제적 불확실성이 다시 가중되면서 경영시계도 멈춰 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
-삼성 제 2 갤노트7 사태 없다…역대급 어닝서프라이즈 발표 영장기각 직후인 1월 23일 삼성전자는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사장)이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갤럭시노트 7의 발화 원인을 배터리 결함으로 지목하면서 차기작인 '갤럭시S8' 등 스마트폰의 안전성 강화 방안을 함께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에 따른 직ㆍ간접 손실을 약 7조원으로 추산하고 상당 부분을 작년 3∼4분기 실적에 미리 반영해 털어냈다. 갤럭시노트7을 판매하지 못한 데 따른 기회비용 1조∼2조원 정도만 남은 상태였다. 삼성전자는 다음날인 1월 24일 2016년 4분기와 연간 경영실적을 깜짝 발표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슈퍼 호황'에 힘입어 작년 4분기에 9조22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역대 3번째 규모다. 5년 연속 200조원 매출(201조8700억원)을 달성했고 연간 영업익(29조2400억원)은 역대 2번째다. 주주환원정책에 따라 올해 총 9조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계획을 발표했고 주당 보통주 2만7500원, 우선주 2만7550원의 2016년 기말 배당을 결의했다. 삼성전자는 역대급 실적에도 특검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실적 발표 후 열린 콘퍼런스콜에서 "단기적 차원에서 비즈니스 영향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장기적 차원에서 봤을 때 글로벌 정세 변화나 사업구조 재편 등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최고경영진의 활동이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는데 이런 것들이 제한을 받는다면 우려되는 상황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이 특검 수사와 관련해 공개적인 논평이나 견해 표명을 자제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 경영진이 컨퍼런스콜처럼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반도체 초호황에 따른 실적개선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연일 상종가를 쳤다. 삼성전자는 주가 200만원 시대의 기대감도 높였다. 두 회사를 합친 시가총액은 무려 30조원이 넘었다. 투자자들도 환호했다. 그간 고공 행진하던 삼성전자 주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검팀의 밤샘 조사를 받고 나온 1월 13일부터 휘청였다가 다시 상승세를 탔다.
-삼성계열사 실적발표하던날 vs 특검은 소환조사 삼성전자를 비롯한 실적발표 시즌에 맞춰 제일모직을 합병한 삼성물산도 연간 실적을 내놨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매출 28조1030억원, 영업이익 14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보다 6.4%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149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전년보다 2890억원 증가해 흑자 전환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일부 해외 프로젝트 손실과 잠재 부실을 반영해 1분기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으나 이후 경영체질 개선과 손익관리 강화를 통해 사업부문별로 안정적인 실적을 보여 연간 실적은 흑자를 기록했다"며 "올해도 경영 효율화를 지속하고 사업부문별로 선택과 집중, 해외사업 확대, 부문별 시너지 가시화로 내실 있는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특검은 이날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전후 상황과 관련된 김신 삼성물산 사장과 김종중 미래전략실 사장을 조사했다. 다음날인 26일 삼성전자는 장중 200만원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고 시가총액은 280조원을 넘어섰다. 노무라 증권은 역대 최고 목표주가인 270만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브리핑하고 있는 이규철 특검보[자료사진]
-2월부터 삼성조준…재계 경영위축 우려 점증설연휴기간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특검은 다시 삼성 수사에 고삐를 죈다. 일각의 여러 의혹이 나왔고 삼성은 이때부터 조목조목 반박하기 시작한다. 삼성출신 유재경 미얀마대사가 최순실씨의 추천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삼성관련 영향이 있었다는 의혹도 나왔다. 삼성은 국정농단사태가 발생한 이후 최씨외 그 일가에 대한 지원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삼성측은 또 유재경 대사 임명과 관련 "그를 대사직에 추천하거나 관여한 일은 없다"고 부인했다. 특검은 최씨의 미얀마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개입 의혹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수사와는 관계가 없다고 했다. 특검이 2월부터 삼성을 비롯해 주요 대기업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재계는 다시 긴장모드에 들어갔다. 특검은 2월 3일 삼성뇌물과 미얀마 ODA사업의혹과 관련, 공정위·금융위을 압수수색했고 승마지원과 관련해서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 김동선씨를 조사하기도 했다. 이미 삼성과 현대기아차의'경영 시계'는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 상황이었다. 삼성은 애초 연말에 이뤄져야할 사장단 인사가 무기한 연기된 상태고 이 부회장의 트럼프 취임식과 CES 2017 방문 모두 무산됐다. 삼성은 상반기(3월) 대졸 신입사원 공채 일정을 두고 결론을 짓지 못했다. 공채 폐지설이 나오고 일부 계열사만 자체 보강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삼성 공채에는 매년 20만명이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과 현대차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미국제품 구매, 미국인 고용)에 고민에 빠진 상태였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공장을 지을 수도 있다는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Axios)를 보고 트럼프 대통령은 3일새벽(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고마워요 삼성! 당신과 함께하고 싶다"(Thank you, @samsung! We would love to have you!)"라고 쓰기도 했다. 2월 5일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배포한 주주 서한에서 올해 경영환경과 관련,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과 함께 어려운 경제여건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리스크가 크고 광범위하며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부문에서 관습적인 시스템과 업무방식을 점검해 철저한 위기관리 체계를 갖추겠다"고 말했다. 또 "공정개선과 검증강화를 위해 품질 경쟁력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여의도 전경련빌딩 입구에 설치된 박정희 전 대통령 휘호 기념비
-삼성 전경련과 결별…미전실 해체 약속 재확인 삼성전자는 2월 6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정식으로 탈퇴원을 제출했다. 삼성전자 외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관련 계열사들도 줄줄이 탈퇴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작년 12월 6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더는 전경련 지원금(회비)을 납부하지 않고 탈퇴하겠다"고 약속한데 따른 조치다. 삼성은 전경련 창립멤버이자 고(故) 이병철 창업주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삼성의 전경련 탈퇴는 앞서 탈퇴서를 낸 LG와 탈퇴예정인 SK 등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갖추며 전경련 와해를 가속화시켰다. 또한 삼성은 이날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끝나는대로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한다는 입장을 냈다. 삼성은 문자메시지를 통한 공지에서 "약속한 대로 미래전략실은 해체한다. 특검의 수사가 끝나는 대로 조치가 있을 것이다. 이미 해체 작업을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이재용 부회장은 작년 12월 6일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삼성 미래전략실을 해체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지적에 "창업자인 선대 회장이 만든 것이고, (이건희) 회장이 유지해온 것이라 조심스럽지만 국민 여러분에게 부정적인 인식이있다면 (삼성 미래전략실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특검, 합병특혜 조준…삼성 "어떤 특혜도 없었다"특검은 정부의 삼성그룹 특혜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집중했다. 2월 3일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공정위 부위원장실, 사무처장실, 경쟁정책국 기업집단과 등을 압수수색했다. 8∼10일 사이에는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과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소환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합병과정에서 특혜가 없었다고 반박했고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도 헌법재판소에 출석해 "삼성 합병건 찬성에서 청와대의 지시나 요청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 과정에서 금융위원회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의혹이 또 나오자 삼성은 다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삼성은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에도 최순실-정유라씨 모녀를 지원했다는 의혹에 대해 "삼성은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진 이후 최순실에 대해 추가 우회지원을 한 바 없고, (명마) 블라디미르 구입에도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검은 12일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인 장충기 사장을 소환 조사했고 13일 오전 9시 30분 이 부회장을 소환 조사한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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