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수다] 인심을 수북이 담은 정월 대보름 음식

세가지 묵은나물

‘설은 질어야 좋고 보름은 밝아야 좋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다. ‘밥이 질다’처럼 ‘설이 질다’라는 말은 설날에는 눈이 많이 와야 눈이 농작물을 덮어 이불 구실을 해 농사에 도움이 되고, 대보름에는 날이 밝아야 환한 보름달을 보면서 한해 농사가 풍년이 되기를 기원하고 농사준비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경생활이 주를 이루었던 과거와 달리 도시화가 되어가면서 이런 의미들은 퇴색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시골에서 정월 대보름은 설날 다음으로 큰 명절이다. 1년에 12번의 보름이 있지만 특히 정월대보름에 큰 의미를 두었던 것은 정월은 한해를 시작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달이기 때문에 설날과 함께 중요한 명절로 여겨왔다. 도시에서는 백화점, 대형할인마트에서 잡곡, 견과류를 1인분씩 포장해 파는 날이 되어야 정월대보름이 오곡밥이나 나물을 먹는 날쯤으로 여기게 되지만 우리동네에는 지금도 달맞이, 달집태우기 등의 대보름 풍습들을 여전히 함께 하고 있고 음식들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있다.정월대보름에 가족 모두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찹쌀, 수수, 팥, 조, 콩 등 다섯 가지 이상의 곡식을 섞어 지은 오곡밥을 지어 먹고 대보름날에 다른 성을 가지 집의 밥을 세집 이상 먹어야 그 해 운이 좋아진다고 하여 여러집들과 오곡밥을 나누어 먹는다.같은 잡곡이 들어가도 집집마다 오곡밥의 맛에도 차이가 있어 먹는 재미가 있다. 약식도 정월대보름에 해 먹는 음식으로 또 찹쌀, 대추, 밤, 잣 등을 넣어 간장, 설탕으로 맛을 내어 오곡밥 대신 약식을 만드는집도 있다. 지난해 말려두었다가 겨울철 내내 먹었던 묵은 나물인 호박고지, 가지고지, 무청시래기, 버섯, 각종 봄나물, 깻잎나물, 아주까리나물, 고구마순까지.. 9가지나물을 정월대보름에 만들어 배춧잎이나 김에 밥을 싸서 ‘복쌈’을 먹으며 복이 들어오기를 기원해본다. 정월대보름을 지나고 나면 신기하게 지난해의 묵은 나물들은 맛이 없어지기에 마지막으로 맛있게 먹는 날이라고 여긴다. 날밤, 호두, 땅콩, 은행, 잣을 깨물면 종기와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는 ‘부럼깨기’, 보름날 새별에 청주를 데우지 않고 나누어 먹으면 귀가 밝아진다는 ‘귀밝이술’ 아침에 일어나 ‘내 더위 사 가시오’를 외치면 여름에도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더위팔기’를 가족들과 보름날 아침에 한다. 이런 풍습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족들 모두가 건강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날로 의미를 두면 좋겠다. 도시화가 되면서 온갖 불빛이 보름달보다 더 밝아져 둥글고 밝은 보름달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고 정월 대보름의 풍습들도 희미해져 가지만 대보름에 모두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면서 나누었던 넉넉한 인심만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정월 대보름이 되었으면 한다. 글=요리연구가 이미경 (//blog.naver.com/poutian), 사진=네츄르먼트 제공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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